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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업가 정담 Sep 05. 2024

끼리끼리와 카더라: 출근하는 정치인들

Chapter 1. Chasing the Big Breaks #5

마케팅팀 증발 사건이 일단락된 이후에도 회사 내부에서는 잡음이 끊기지 않았다.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수면 밑에서 카더라 통신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었고 아무도 다이렉트하게 소통하지 않았다. 직원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들은 더욱더 자주 관찰되었다. 


당시에는 코로나로 자금줄이 막혀 버린 상황에서 투자유치에 신경을 쓰다 보니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그때는 모든 감정상태가 얼굴에 표출되던 때라 직원들은 내 표정을 살피며 회사의 미래를 운운하곤 했다. 


투자유치 활동만으로도 벅찬데 높아져 버린 커뮤니케이션 코스트와 다이렉트하지 못한 소통들이 업무 외적으로 에너지를 갉아먹어 지쳐가는 상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직 분위기가 가장 좋지 않았던 때 우리는 회사 최초로 HR 담당자를 채용하게 되는데 정확히 2주 후에 회사 분위기가 너무 이상하여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조직 내부에 그전에는 없었던 묘한 기류가 확실히 감지됐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외부 활동과 별개로 내부의 움직임들을 더욱 주시했다. 우리가 10명 미만이었을 때는 이런 일은 전혀 없었다. 모두 형 동생하며 하루 세끼를 같이 먹었던 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뿌연 안갯속에서 명확하진 않았지만 조직내부에 편을 가르고 뭉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단순하게 팀 간의 사일로(팀 이기주의 or  팀 간의 단절)가 아니라 친한 사람들이 생겨나고 끼리끼리 편을 가르는 것처럼 보였다. 


팀 간의 사일로는 적절히 관리한다면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을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점조직처럼 아무 관련 없는 인적인 편 가르기는 회사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언가 아웃풋은 없는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다니고 무슨 문제가 있냐고 일대일로 면담을 해도 나아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스타트업의 생명인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정말이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나의 걱정을 알기라도 하는 듯 팀장 A가 와서 말했다. 




"저 대표님 잠깐 저 좀... 제가 어디서 들었는데 C와 팀장 J가 서로 사이가 안 좋아서 업무 진행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던가요?"

"그것까진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냐고 물어봐도 곤란한 듯 얼버무리고 뚜렷한 증거도 없기에 따로 불러서 물어보기에도 애매한 사안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중재자처럼 '뚜렷한 출처는 없지만 어쩌다 알게 된 사실'을 회사의 미래를 위하는 것처럼 나에게 전달해주곤 했다. 맥락이 전혀 없는 그의 얘기는 참으로 이상했다. 


그러던 중 C가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자주 눈에 뜨였고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굉장히 지친 얼굴을 하고 다녔다.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였던 C에게 힘든 일 있으면 서로 얘기해서 개선하자고 말을 건넸는데 "대표님이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라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지금 회사에 일어나고 있다고? 이게 A가 이야기한 C와 J 간의 불화 때문인가? 나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일이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좋은 회사를 만들고자 하니 솔직하게 얘기해도 된다. 날 도와달라"라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지만 그 직원은 여전히 건성으로 듣는 듯했다. 




자, 이쯤 되면 내 속이 얼마나 타들어갔는지 짐작이 될지 모르겠다. 


조직 분위기는 이상했고 누구한테 물어봐도 뚜렷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으며 근거 없는 루머들만 돌아다녔다.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모습은 예전보다 더욱 많이 보였다. 정치판처럼 새로운 파벌이 계속 생기는 것 같았다. 도대체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있기나 한지 모를 지경이었다.   


스타트업을 비유하는 말 중에 가장 재밌었던 것은, '스타트업은 고장 난 비행기가 절벽에서 추락하는 동안 비행기를 고쳐서 다시 날아오르는 과정'이라 했다. 그만큼 스타트업은 미래를 알 수 없고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런데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은 끼리끼리 사무실을 들락날락하며, 출처를 알 수 없는 카더라들이 오가고 대표는 무시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분명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회사의 수면 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회사를 만든 이후 그동안 출근하는 아침이 매일 즐거웠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조직의 균열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처음 겪는 문제였고 해결책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치 나만 모르는 일이 우리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우리가 20명 정도의 조직이 되었을 때 벌어진 일이다. 

그러던 중 드디어 일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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