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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업가 정담 Aug 26. 2024

살면서 받아본 최악의 인사평가

 Chapter 2. The Ambitious Boy #7

당신이 살면서 받아본 자신에 대한 최악의 평가는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남들의 평가를 궁금해한다. 또 한편으로 자신은 평균보다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 운전자 10명 중 9명이 자신의 운전실력이 평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통계도 있을 정도다(Ola Svenson, Are we all less risky and more skillful than our fellow drivers?). 


이 이야기는 평소 미친 모티베이션으로 스스로 일하던 내가 직장에서 받아본 최악의 인사평가에 대한 이야기다.  




5년 간의 증권회사 커리어를 매듭짓고 독일계 자산운용사로 이직을 했다. 


새 직장에서 내 역할은 금융상품을 기관 투자자들에게 영업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영업직이었다.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 큰손들을 대상으로 투자금을 유치하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상대적으로 주니어였던 내 업무의 대부분은 제안서를 만들거나 하는 서포트업무였다. 나는 주어진 것도 열심히 했지만 원래의 기질대로 회사에서 비어 있던 영역을 찾아 성과를 내려고 했고 해외상품 소싱 쪽이 눈에 들어왔다. 팀 사람들이 모두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해외상품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 기회가 있다고 봤고 또 뭔가를 성취할 수 있을 거라는 흥분감에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네이티브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영어를 할 수 있었고 해외 인력들을 데리고 미팅을 갈 때면 놀랍게도 내가 중간 통역을 하기도 했다.       


예상은 적중했고 홍콩 오피스와 협력해 한국은행으로부터 3천억 원 유치라는 역대급 성과가 나왔다. 그 당시 한국 오피스의 수탁자산이 10조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영업 한 번에 3%의 자산이 늘어난 격이었다. 이후 다른 고객으로부터 1백억 원의 투자유치를 또 이끌어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나는 여러 고객들 중 버려져있던 고객들을 추렸다. 영업 인력은 팀장을 포함해서 3명이었기 때문에 모두 뛰어다녀도 수십 개의 중소 고객들을 커버할 수가 없었고, 경험이 적은 내가 부딪쳐보기에도 좋은 사이즈라고 생각했다. 나는 팀장님께 이 고객들을 직접 영업해 보겠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내가 받은 대답은 단호한 'No'였다. 그 이유는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나는 직장인이었지만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며 시킨 일만 하지 않는 스타일은 이전 직장에서 항상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엔 혼란스러웠다. 


내가 영업력이 부족한 건 맞을 수 있지만 그럴수록 더 부딪쳐봐야 성장하는 것 아닌가? 처음부터 큰 고객들을 상대하기에는 당연히 어렵겠지만 작은 고객들로 시작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견이 많았지만 팀장님의 너무도 확고한 대답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Ctrl C/Ctrl V를 주력으로 단순 제안서 작업만 반복했다. 그 해의 연말 성과평가에서 내 제안이 묵살당한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래, 너는 너의 성과가 어떻다고 생각하나?"

"지원업무를 충실히 수행했고 해외 상품 영업에도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

"아니, 틀렸어. 너는 궂은일은 안 하고 멋있는 일만 골라하려고 해."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멋있는 일? 이게 무슨 말이지? 해외상품 영업 일을 말하는 건가? 


"또 너는 다른 부서 사람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니? 다들 널 불편해해. 너 때문에 일하기 힘들어한다고. 너 밑에 있던 직원도 너 때문에 퇴사한 거 알지?


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나는 과장 직책임에도 불구하고 늘 백 페이지에 달하는 제안서를 시니어들이 영업할 수 있게 손에 쥐어줬으며 회사에서 야근을 가장 많이 하는 1인이었다. 다른 부서와의 갈등은 공공연하게 있어왔던 일이고 팀의 이익을 위해 타 부서에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부하직원은 커리어 전환을 위해 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나도 주관적일 것이라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내 평가가 안 좋을 수 있다. 그리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피드백을 양분으로 더 성장하면 된다. 그런데 최소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구분해서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나. 


성과가 있었음에도 그에 대한 언급은 없고 시종일관 부정적 피드백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업무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서 내 인성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있으니, 부하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듣고 있다가 되물었다. 


"그럼 제가 잘한 건 전혀 없나요?"


나도 어지간히 고집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돌직구를 던지는 것도 보통은 아니지. 그런데 그다음 돌아온 대답은 정말 대단했다. 난 지금도 이 명대사를 잊지 않고 앞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넌 잘한 게 있어도 소용이 없어." 

난 이때 내 안에서 뭔가가 부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는 그냥 분하고 허탈한 느낌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인턴 때부터 이어져온 성공공식과 성취 루프가 끊어진 것이었다. 


1)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2) 목표를 달성하며 3)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서 모티베이션이 극대화되어야 하는데, 목표 설정(중소 고객들 커버)이 거부되었고 달성했던 것들(해외상품 영업)도 부정되었으며 긍정적인 피드백은 전혀 없었다. 


본능적으로 이미 굳어진 회사와 사람들 속에서는 내가 능동적으로 움직여도 원하는 것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고 강하게 느꼈다. 그리고 성취 루프가 망가지면서 커리어에서의 성공과 사업을 통한 성공 사이에서 내 마음속 무게추가 사업 쪽으로 한 단계 기울어진 느낌이었다. 


훗날 나는 보장된 커리어를 지속할지 불확실한 사업가의 길을 갈지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는데 이때의 경험은 분명히 내 의사결정에 도움을 줬다. 내가 속한 환경에 따라 나의 성취가 달라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으니까. 지금은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 모르는 당시 팀장님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사람들의 능력치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피드백은 나에 대한 소중한 의견이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는 게 맞다. 하지만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최고의 모티베이션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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