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the Company thinks #5
우리 회사 직원들은 회식을 간절히 원한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생각했던 바와 전혀 다른 일들도 생기는데 이것도 그중 하나다. 부서회식도 아니고 모두가 함께하는 전체 회식을 하고 싶어 안달들이다.
회식과 관련된 이미지는 보통 '누굴 위한 회식인지 모르겠다', '퇴근 후에도 일 시키지 마라'와 같은 힘들고 괴로운 느낌이 떠오른다. 가기 싫어도 억지로 가야 하고 윗사람들을 위해 억지로 웃음 지어야 하는 자리 정도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회식에 대한 이미지 아닐까 싶다.
나 자신도 직장인으로 일할 때 회식이 너무 싫었다. 부서 어르신들의 자기 자랑과 잔소리를 굳이 술자리에서 듣는 것도 싫은데 심지어 메뉴라도 잘못 시키면 욕도 먹었다. 한 번은 10만 원 정도인가 비싼 술 한번 시켰다가 6개월 내내 잔소리 들은 적도 있다.
내가 경험한 회식의 레전드는 노래방이었다. 당시 우리 사장님은 불룩 나온 배와 벗어진 이마와는 어울리지 않게 가수 뺨치는 미성의 가창력의 소유자였는데, 정말 노래를 잘하셨다. 한 두곡 정도는 정말 괜찮았다. 이 한 두곡이 3시간으로 이어지기 전까지는 정말 괜찮았다.
농담이 아니다. 노래방은 기본 3시간이었고 대중가요에서부터 트로트, 댄스, 팝송을 거쳐 최종 피날레는 항상 J-Pop으로 끝났다. 노래방을 간다고 하면 우리 과장 이하 직원들은 모두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비장한 표정으로 고객을 끄덕였고, 3시간 후 탬버린으로 빨갛게 얼룩진 손바닥을 서로 어루만져 주었다.
여하튼 나 자신도 회식에 대한 이미지가 좋진 않았기에 회사를 운영할 때 직원들에게 이를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부서회식은 자율에 맡겼지만 전체 회식은 5년 간 단 두 번 정도 했을 정도다. 회식은 우리 회사에서는 없던 문화였다.
그렇게 회식 없는 회사였던 우리였는데 지난해 무겁고 무거웠던 구조조정 이후로 남은 사람들끼리 으쌰으쌰 하고자 연말에 전체 회식을 하기로 했다. 이것이 창립 이래 세 번째 회식이었다.
추웠던 한 겨울 역삼역 뒷골목 어딘가, 고깃집의 절반 정도를 빌려서 진행한 연말 단체 회식. 회식을 안 하는 회사니 누가 술을 강요하는 문화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돼지고기를 열심히 구워가며 다들 얼큰하게 취한 모양새였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대표님 한 말씀하시죠?"
"오 한 말씀하세요! 와!!!"
박수가 쏟아졌다. 어라. 이건 무슨 분위기지.
난 INTJ로 태어나서 대표직을 하며 ENTJ를 강요받던 사람이라 예상치 못한 건배 제의에 적잖이 놀랐다. 사실 직원들에게 살갑게 대한 적도 없고 요즘 MZ 감성이 이런 거 아닐 텐데 하며 신기하기도 했다. 어쨌든 강요에 못 이겨 술잔을 들고일어난다.
"자, 지난 1년간 우리 누구보다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만은 우리 고생한 거 다 풀고 갑시다. 제가 선빵 외치면 위하여 해 주십시오!"
내가 생각해도 평범한 대사였다. 그런데 문제는 식구들 반응이 너무 좋은 거다. 다들 우렁찬 목소리에 손뼉 치고 웃고 난리가 났다. 한바탕 건배사 이후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옆자리에 직원이 나한테 물었다.
대표님, 우리 회식 더 자주 하면 안 돼요?
우와아. 난 혼란스러웠다. 뭣 때문인지 감동스럽기도 했다. 원래 이렇게 회식 좋아해?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네, 그럽시다!"라고 짧게 대답하고 다시 술잔을 기울이며 생각했다. 보통 다들 싫어하는 회식인데 우리 식구들은 왜 이렇게 회식에 목말라하지?
이후로 우리는 연에 2회 정기적으로 전체 회식을 하기로 했고, 예상대로 할 때마다 직원들은 빠지는 사람 한 명 없이 다들 신나게 먹고 마셨다. 어느 테이블이나 왁자지껄이었으며 이상하게 술도 빼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가게의 술을 다 없애고 싶어 하는 것처럼 적극적이었다.
난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내가 끔찍하게 싫어했던 과거의 회식과 지금 우리의 회식이 뭐가 다른가 하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 회식은 회식 본연의 목적에 부합했기 때문인 것 같다.
회식이 처음부터 괴로운 자리의 대명사는 아니었을 거다. 원래는 서로 힘들었던 걸 보듬어 주고 음식도 나눠먹으며 앞으로의 희망도 이야기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누군가 이기적인 마음으로 사람들을 희생시키기 전까지 말이다.
다행히 우리 식구들은 왜곡 없이 서로 소통하는 자리로 회식을 순수하게 즐기는 모습이었고 이게 어느덧 우리 회사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누구도 빼지 않고 누구나 솔직해질 수 있는 자리로.
난 고마웠다. 내가 만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얼마 안 되는 회식 자리에서 또 힘을 얻어가는 직원들의 모습이 회사를 만든 것에 대한 보답인 것처럼 느껴져서 고마웠다.
앞으로도 우리 회사는 1년에 2번의 전체 회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형편이 더 좋아지면 더 자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 스스로가 그걸 원할지는 모르겠다. 아마 6개월 정도는 자기 일에 집중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수고한 그들을 위하여 1년에 2번은 내가 술병이 나더라도 이 작은 축제를 성대하게 진행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