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독노트

자살에 대한 T적 이해

<자살의 이해>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by 정다운


여러 이유 때문에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대부분의 책이 그렇겠지만, 이 책은 특히 읽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나에겐 이 책이 무척 흥미로운 전공 입문 서적 같았다. 읽는 동안 몰랐던 이야기를 새롭게 아는 기쁨이 컸다. 내가 어떤 독자인지 우선 밝히자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중에 자살한 이는 없다. 나는 어떻냐면, 누구나 그렇듯 가끔 죽고 싶단 생각을 한다. (안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하지만 대체로는 죽고 싶다기 보단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쪽이다. 사는 게 귀찮아질 때면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는 건 생각만 해도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사는 건 귀찮고 죽는 건 번거롭다. 그 외에 자살과 관련된 가장 강렬한 기억이라면, 음, 나도 하나 있다. 학창 시절 언제나 엄마가 자살할까 봐 불안했다. 하교하고 집에 가서 현관문을 열면 엄마가 죽어있을 것 같아서 문 열 때마다 심호흡을 해야 했다. 혼자 만의 망상은 아니었다. 엄마는 어느 시절 자주, 죽어버리겠다고 나를 협박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온순하고 모범적인 청소년이었다. 그때 엄마는 우울증이었을까? 나는 어렸고,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오랫동안 엄마 기분을 맞추며 살아왔다. 여기까지가 나라는 개인의 ‘자살’과 관련된 경험이다.


<자살의 이해>가 나에게 흥미롭게 다가온 건, 자살을 이해시키는 방식 때문이다. 10대부터 40대까지 전 세대 사망률 1위가 자살인 시대다. 자살은 흔해졌다. 하지만 누군가의 자살 소식을 듣거나 기사를 읽을 때면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고 헤아리거나, 왜 그랬을까 책망하거나,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고, 공감하거나, 혹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회피하거나… 자살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거기까지인 것 같다. 늘 감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자살은 당연히 그런 주제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이 책은 F적으로만 생각해 온 자살은 T적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다. 단 한 번도 자살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는 걸 <자살의 이해>를 읽으며 알았다. 추상적으로만 인식했던 자살과 그에 이르게 되는 정신질환과 개인의 고통에 대해 A부터 Z까지 설명한 이 책을 마치 흥미진진한 소설책을 읽듯 몰입해서 읽었다. 한 장 한 장 쏙쏙 흡수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은 후, 자살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었다. 자살을 다른 ‘병사’와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병의 끝이 죽음인 것. 그게 암이든, 심장병이든, 다른 문제이든, 정신질환이든 그 끝이 죽음일 수도 있다는 것. 그 끝이 죽음인 것뿐이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자살이 지금까지와 다르게 보인다. 두루뭉실하고 난해한 문제에서 선명하고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 가령 다른 병처럼 조기에 진단하고 재활 치료를 하고 상태가 심각해지면 입원을 하는 식으로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회복을 하고자 한다면 자살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전에 이해를 해야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왜 자살에 대해서는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대통령에게 읽기를 권하고 싶다)


또한 이 책은 정신 질환을 경험하고, 자살 사고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돕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모든 고통은 개인적이다. 그리고, 정신적 고통은 더욱더 개인적이다. 다른 병에 비해 객관적으로 병증을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MRI나 CT, 혈액검사, 초음파 등등으로 측정할 수 있고, 전문적인 의료진들이 있는 병과, 그러지 않은 병을 대할 때 환자들의 태도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그 때, 이 책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의 질환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걸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에 대해 떠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이 단락을 지울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둡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터부시되는 ‘자살’이라는 단어가 떡하니 써있는 붉은 책을 들고 다니는 일은 너무 흔하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색한 단어 '자살'과 친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자살의 이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적힌 제법 두꺼운 책을 침대에 들고가서 읽다가, 일어나자마자 테라스에 나가서 이어 읽고, 카페 등지에서 펼쳐 읽는 게 좋았다. 입에 담는 것이 조심스러웠던 단어를 입 밖으로 낼 수있게 되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삶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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