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메이
지난 독후감에서 ’나는 고운 글을 쓴다 ‘고 이야기했었다. 고운 글이 어떤 글이냐면, 고운 내가 쓰는 글이다. 착한 내가 쓰는 글이다. 그렇다. 나는 주로 착할 때 글을 쓴다. 그래야 다정한 글이 나온다. (꼭 다정한 글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짚고 가야 할 것 같지만, 오늘의 주제는 그것이 아님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언제 착해지냐면, 기분이 좋을 때, 거슬리는 게 없을 때 착해진다. 아픈 나는, 괴로운 나는, 화가 난 나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아플 일도 화날 일도 숱하다. 그래서 아프기 전에 화가 나기 전에 서둘러 글을 쓰기 위해 하루종일 분주하다. 가령 마감일이 정해지면 생리 주기부터 체크하는 식이다. 잠깐, 예전에 쓴 글의 일부를 가져와 보자.
“종종 글 쓰는 것보다 좋은 기분을 만드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오늘도 일할 분위기를 부지런히 조성하고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앉았지만, 예상치 못한 험한 뉴스에 날카로운 공격을 당했고, 업무와 상관없는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에너지를 낭비해야 했다. 수시로 이어지는 가족들의 연락도 집중을 방해했다. 크고 작은 분노와 짜증이 차올라 잠깐 키보드를 던지고 그만 쓸까 했지만, 그러는 대신 고양이를 안고 잠깐 소파에 누워있었다. (이쯤 되면 고양이는 작가의 필수품 아닌가요? 아, 물건이라는 얘긴 아니고요.) 따뜻한 물을 마시고, 좋은 음악을 듣고, 달콤한 디저트를 꺼내 데워 먹었다. 그렇게 나를 살살 달랜 다음 이 글을 마저 쓰고 있다. 내 기분 관리하는 일에 이제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전보다 조금 착해졌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다정하고 편안한 글을 쓰려면 부단히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게 가꾼 삶이 내 글에 영향을 주었고 그 글이 다시 나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아마도 앞으로 사는 내내 삶과 글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살게 될 것 같다. 나는 방문을 닫고, 세상과 단절한 채, 주변을 잠시 잊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명작을 쓰는 작가는 영영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쓰는 이 글이 나를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살게는 한다. 그렇다면 유명 작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 거 아닌가. 베스트셀러 작가보다,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이끈 작가가 더 성공한 작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기분을 좋게 만들며 이 글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덕분에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
이 글을 쓴 지 2년 남짓 지났고, 이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하루에 취소선을 그린다. 지금까지 가능하지 않은 것을 쫓아왔다는 걸, 천천히 하나씩 깨닫고 있다. 불안에 자주 잠식당하는 편이라, 종종 ‘불안’과 관련된 책을 읽고 영상을 찾아본다.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대개 완벽주의자들이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닌데, 내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거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최근 인정하기 시작했다. 100%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물아래서 끝없이 발장구를 치는 내가 완벽주의자가 아니면 뭐란 말이지? 나는 내가 쓴 것처럼 좋은 하루, 아름다운 삶을 창조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완벽주의자에 불과했던 거다. 혹은 컨트롤 프릭이거나.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읽지 않던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로 철학, 인문학 등등이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공부를 왜 하는가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물론 재밌어서 한다.) 읽고 쓰는 게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까? 주위를 둘러보면 책을 많이 읽었다고 더 행복한 것 같지도 않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더 현명하다던가, 품이 넓은 것 같지 않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정말 많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읽고 쓰고 공부해야 하는가. 그 답을 나는 이 책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에서 찾았고, 나의 변화에서 찾는 중이다.
사람은 진공 상태에서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영향을 받으며 존재한다. 공부를 하며 그걸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정희진 선생님이 수업 중에 ‘인생무상’을 언급하며, 인생무상은 인생이 덧없다는 뜻이라기보다 인생에 항상 한 때는 없다는 의미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큰 위안이 되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없이 들었던 '인생무상' 네 글자가 새삼스럽게 나를 위로한 건, 내가 공부하며 생각해 온 것들과 교차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일 거다. 항상 하지 않은 인생, 항상 하길 바라니 늘 괴로웠다.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이 고단했다. 질병이 찾아와 일상이 깨질까 봐 전전긍긍했고, 나의 사랑하는 노묘가 내 곁에 영원히 건강하게 머물기를 바랐다. 일상이 깨질까 봐 늘 불안했다. 사실 일상은 늘 깨져있었는데.
근래 질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과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 솔직하고 과감하며 구체적인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언제나 나는 함께 불안했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는 그렇지 않았다. 나를 위로했고, 용기를 주었다. 고통 속에서도 읽고 탐구한 사람. 그것을 통해 고통을 말하는 사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읽고 써야 하는 지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깊게 깨닫는다. 읽고 공부할 때, 나만 아는, 종종 나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이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로소, 아픈 나도, 화가 난 나도, 짜증으로 가득한 나도, 어쩌면 글을 쓸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긴장이 풀리고 안심이 된다. 억지로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프면 아픈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잔뜩 웅크린 채로도 글을 쓰고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덜 불안하다. 역시 계속 공부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