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아직 몇 편 올리지 않았지만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앞으로도 멋들어진 필명을 쓴다거나 강아지나 바다, 나무 따위를 프로필 사진으로 쓰진 않을 거다. 필명과 강아지 사진 뒤에 숨어 진짜 내 모습을 감추고 싶지 않다. 브런치에 있지도 않은 전문 지식을 뽐내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가 살아가면서 겪고 있는 일 그리고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을 쓰고 싶다. 내가 갖고 있지도 않은 모습으로 내 얼굴에 덕지덕지 분칠 하고 싶지 않다. 이곳에 내 진짜 모습을 쓰고 싶다.
그런데 그건 과연 쉬운 일일까?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쉬운 일일까? 어려운 일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나는 대단하지도 아름답지도 멋지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내 글도 대단하거나 아름답거나 멋질 리 없지만, 또 한편으론 대단하고 아름답고 멋져 보이고 싶기 때문에 내 글도 대단하거나 아름답거나 멋져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유치하지만 그렇다. 이런 분열이 글쓰기를 더 어렵게 하고 브런치에 발행하는 것은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는 내 얼굴과 이름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내 얼굴과 이름이라는 관념에는 이미 수많은 타인의 시선이 드리워져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관념 역시 얼굴 없는 타자들의 시선으로 덧씌워져 있다. 늦은 밤 모터사이클에 올라타 있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지만 연료통 양쪽에 박혀있는 큼지막한 BMW 로고에는 수많은 시선이 서려있는 것만 같고 난 있지도 않은 시선을 즐기는 것처럼. 분명 주위엔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잘생긴 라이더를 선망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리따운 여성,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라는 허황된 감성을 팔아먹는 모터사이클 광고의 주인공이 될까 싶어 모터사이클을 타고 한밤중 잠수교로 향했다. 그곳은 이미 람보르기니와 페라리로 점령되어 시속 20km 패션쇼 워크가 한참이었다.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그렇게 느릴 수 있다니. 하지만 잠수교만 지나면 이내 다른 차들 다 씹어먹을 것처럼 부와앙 내달리는 모습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나도 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자각에 웃음이 뚝 끊겼다. 잠수교에서부터 이태원에 이르는 길까지, 똑같은 짓을 그들 뒤꽁무니에서 똑같이 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거리에서 그런 모습을 보면 관종들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못한다. 난 그들과 다르지 않으니까.
나는 내 얼굴과 이름을 넘어 내가 하는 사소한 행동, 먹는 음식, 읽는 책, 쓰는 글, 모터사이클, 스쿠터, 사소한 물건까지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얼굴 없는 타자는 매 순간 모든 것에 늘 유령처럼 날 쫓아다닌다. 이쯤 되면 내가 정말 욕망한다고 믿는 것은 진짜 내 욕망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라캉의 말처럼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라면, 진짜 내 욕망이라 할만한 것은 없는 게 아닌가? 그의 저주 같은 말이 사실이라면 주체네 자유네 칭하는 것들의 자리 또한 없는 게 아닌가?
하지만 라캉을 부정할 수만도 없는 것은, 몇 번의 연애 그리고 그 후 결혼에 이르기까지 돌아보면, 내가 과연 그들의 진짜 모습만을 사랑했던 것일까라는 강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부모가 좋아하는 사람, 사회가 좋다고 하는 사람과 연애와 결혼까지 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애초에 시작조차 안 했기 때문이다. 연애와 결혼 상대의 기준마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시선뿐인가, 난 얼굴 없는 타자들에게서 내 감정마저 "허락"을 구한 것이다.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호감과 사랑이란 감정마저 얼굴 없는 타자들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면, 대체 내것은 무엇인가? 대체 나라는 인간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