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도 Nov 07. 2021

타인의 시선

나는 내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아직 몇 편 올리지 않았지만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앞으로도 멋들어진 필명을 쓴다거나 강아지나 바다, 나무 따위를 프로필 사진으로 쓰진 않을 거다. 필명과 강아지 사진 뒤에 숨어 진짜 내 모습을 감추고 싶지 않다. 브런치에 있지도 않은 전문 지식을 뽐내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가 살아가면서 겪고 있는 일 그리고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을 쓰고 싶다. 내가 갖고 있지도 않은 모습으로 내 얼굴에 덕지덕지 분칠 하고 싶지 않다. 이곳에 내 진짜 모습을 쓰고 싶다.


그런데 그건 과연 쉬운 일일까?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쉬운 일일까? 어려운 일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나는 대단하지도 아름답지도 멋지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내 글도 대단하거나 아름답거나 멋질 리 없지만, 또 한편으론 대단하고 아름답고 멋져 보이고 싶기 때문에 내 글도 대단하거나 아름답거나 멋져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유치하지만 그렇다. 이런 분열이 글쓰기를 더 어렵게 하고 브런치에 발행하는 것은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는 내 얼굴과 이름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내 얼굴과 이름이라는 관념에는 이미 수많은 타인의 시선이 드리워져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관념 역시 얼굴 없는 타자들의 시선으로 덧씌워져 있다. 늦은 밤 모터사이클에 올라타 있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지만 연료통 양쪽에 박혀있는 큼지막한 BMW 로고에는 수많은 시선이 서려있는 것만 같고 난 있지도 않은 시선을 즐기는 것처럼. 분명 주위엔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잘생긴 라이더를 선망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리따운 여성,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라는 허황된 감성을 팔아먹는 모터사이클 광고의 주인공이 될까 싶어 모터사이클을 타고 한밤중 잠수교로 향했다. 그곳은 이미 람보르기니와 페라리로 점령되어 시속 20km 패션쇼 워크가 한참이었다.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그렇게 느릴 수 있다니. 하지만 잠수교만 지나면 이내 다른 차들 다 씹어먹을 것처럼 부와앙 내달리는 모습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나도 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자각에 웃음이 뚝 끊겼다. 잠수교에서부터 이태원에 이르는 길까지, 똑같은 짓을 그들 뒤꽁무니에서 똑같이 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거리에서 그런 모습을 보면 관종들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못한다. 난 그들과 다르지 않으니까.


나는 내 얼굴과 이름을 넘어 내가 하는 사소한 행동, 먹는 음식, 읽는 책, 쓰는 글, 모터사이클, 스쿠터, 사소한 물건까지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얼굴 없는 타자는 매 순간 모든 것에 늘 유령처럼 날 쫓아다닌다. 이쯤 되면 내가 정말 욕망한다고 믿는 것은 진짜 내 욕망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라캉의 말처럼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라면, 진짜 내 욕망이라 할만한 것은 없는 게 아닌가? 그의 저주 같은 말이 사실이라면 주체네 자유네 칭하는 것들의 자리 또한 없는 게 아닌가?


하지만 라캉을 부정할 수만도 없는 것은, 몇 번의 연애 그리고 그 후 결혼에 이르기까지 돌아보면, 내가 과연 그들의 진짜 모습만을 사랑했던 것일까라는 강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부모가 좋아하는 사람, 사회가 좋다고 하는 사람과 연애와 결혼까지 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애초에 시작조차 안 했기 때문이다. 연애와 결혼 상대의 기준마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시선뿐인가, 난 얼굴 없는 타자들에게서 내 감정마저 "허락"을 구한 것이다.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호감과 사랑이란 감정마저 얼굴 없는 타자들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면, 대체 내것은 무엇인가? 대체 나라는 인간은 무엇인가?


작가의 이전글 모터사이클은 사람과 닮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