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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Nov 03. 2021

모터사이클은 사람과 닮았다

나는 모터사이클을 좋아한다.


모터사이클은 사람 키만 한 길이에 골반 높이이고 폭은 사람의 골반과 차이가 없다. 모터사이클은 갖가지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부품들로 빼곡히 구성되어 있다. 연료통은 가솔린을 10리터 넘게 담고 배터리와 연결된 점화플러그는 배터리의 전류와 소량의 가솔린을 매개로 작은 불꽃을 일으킨다. 이 작은 불꽃으로 인해 엔진에 가솔린이 폭발해서 피스톤의 상하 운동이 시작된다. 적절한 양의 가솔린이 폭발을 일으키면 피스톤은 폭발의 반작용으로 위로 아래로 반복하여 운동한다. 가솔린의 에너지는 폭발로 소멸되는 듯하다가, 피스톤의 상하 운동으로 전환되고 이는 다시 커넥팅 로드 connecting rod를 타고 크랭크 축 crankshaft으로 이동하여 이에 연결된 체인을 회전시키고 체인에 연결된 뒷바퀴가 회전하게 되는 것이다. 가솔린의 잠재된 에너지가 작은 불꽃을 만나 폭발하여 상하 운동으로 전환되고 이것이 이동하여 회전 운동으로 전환되며 이는 결국 굴림 운동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굴림 운동이 200 킬로그램이 넘는 육중한 덩치의 기계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모터사이클은 두 바퀴 달린 기계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스스로 설 수 없다. 스스로 달릴 수도 없다. 앞으로 내달리는 기계라는 모터사이클의 정체성을 완성하고 결정짓는 것은 사람이다. 모터사이클에 올라타 사이드 스탠드를 왼발로 걷어찬 후, 두 다리로 모터사이클을 세워야 한다. 묘한 불균형, 떨림, 불완전의 그 순간, 왼손에 감아쥔 브레이크와 왼손 검지와 중지 끝의 클러치를 부드럽게 풀기 시작하고 오른손으로 감아쥔 쓰로틀을 내 쪽으로 조심스레 당기면 엔진에 더 많은 가솔린이 주입되고 엔진 속 피스톤은 더 힘차게 상하 운동하면서 두 바퀴의 굴림이 시작된다. 좌우, 전후 사이의 그 미묘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그때, 인간은 모터사이클에, 모터사이클은 인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두 바퀴의 굴림이 시작된 그 순간이 끝은 아니다. 균형이 완성되지 않은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나는 그 떨림과 불안정의 상태에서 균형을 찾아야만 한다. 이때 균형을 찾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쓰로틀을 더욱 당기는 것뿐이다. 쓰로틀을 당겨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손에 힘을 주지 않으면 쓰로틀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고 엔진 속 폭발은 작아질 것이며 200 킬로그램의 기계에 내 몸무게만큼의 무게를 더한 그 육중한 존재는 불균형을 이기지 못해 고꾸라지게 되어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쓰로틀을 더욱 힘껏 당겨 불균형과 불안정을 이겨낸다면 나는 앞으로 더욱 나아갈 것이다. 나름의 균형을 찾게 될 것이다. 속도에 속도가 더해지는 그 순간, 땅에 디딜 듯 말 듯한 두발을 풋 레스트 foot rest에 놓고, 꼿꼿이 세워두었던 허리와 손 끝에 힘을 살짝 빼면 된다.


그 순간 바람이 좌우로 앞뒤로 때리기 시작한다. 바람은 늘 등 뒤에서 부는 건 아니다. 바람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순풍이든 역풍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바람을 뚫고 지나가는 것뿐이다. 바람에 내 몸을 맡겨야 한다. 그에 저항하면 할수록, 그 힘은 더욱 자라나 전진하려는 나를 막아선다. 하지만 바람을 피해 상체를 모터사이클 연료통 가까이 숙이면 바람의 저항은 그만큼 잦아든다. 바람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온몸을 잔뜩 웅크린 채 바람을 관통하는 것뿐이다.


강한 바람   불안정과 불균형의 상태에서 나와 모터사이클은  몸이 된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는 불안정을 피하기 위해 모터사이클을 필요로 하고, 모터사이클은 같은 이유로 나를 필요로 한다. 바람이 거셀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가 된다. 쓰로틀을 감은 오른손과 브레이크를 감아쥔 왼손을 핸들에서 떼어 손가락 사이를 통과하는 서늘한 바람을 느끼는 그때, 서로의 의존 관계에서 약간의 자유를 누리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은 찰나이다. 핸들에서  팔을 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균형과 불안정의 순간이 여지없이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나와 모터사이클은 서로를 의지하기도 하고 서로로부터 잠시나마 독립하기도 하며,  순간 균형과 불균형, 안정과 불안정의 양면을 횡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너와 나처럼. 너도 나도 모두 불완전하기에. 세찬 바람이 불 땐 서로를 꼭 감싸 안아야 하는 것처럼. 그러다 바람이 잦아들면 서로를 감쌌던 손과 팔에 힘을 스르르 빼야 하는 것처럼. 그제야 너와 나 사이 벌어진 그 작은 틈으로 우리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것처럼. 그래야 나도 너도 서로를 조금은 더 잘 볼 수 있으니까.


두 바퀴 모터사이클은 그래서 사람과 닮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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