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도 Nov 03. 2021

아빠의 욕망 나의 욕망

부전자전이라 했던가. 아빠는 모터사이클을 욕망한다. 10년 전에 내가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혹여라도 내가 죽을까 봐 걱정했던 엄마와 달리 아빠는 날 진심으로 응원해줬다. 물심양면으로 날 도와줬다. 아빠가 없었으면 난 여행을 떠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인맥을 통해 내가 모터사이클을 공짜로 스폰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뿐인가. 6개월 간의 대륙 종단 여행을 위해 짐을 가득 실을 수 있는 철제 케이스도 공장 수소문부터 시작해서 작업 지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날 도와줬다. 그때 참 아빠가 고마웠다. 그런 아빠가 너무 고마워서 여행을 떠나기 직전 2010년 11월, 아빠를 뒤에 태우고 온 동네를 한참 동안 같이 달렸다. 뒤에서 아빠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찬바람이 인정사정없이 얼굴을 때렸지만 아빠와 달리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지금도 그때를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안다. 아빠는 사실 날 도왔다기보단 그 자신을 도운 것이라는 걸. 모터사이클은 지금껏 이루지 못했던, 상상으로만 남겨뒀던 아빠의 오랜 꿈, 아빠의 오랜 욕망이었다는 걸. 태평양을 오른 켠에 두고 북미에서 남미로 이어지는 Highway 1을 달리는 내내, 난 단 한순간도 아빠를 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시간 내내 난 아빠와 함께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바보다. 모터사이클이 그렇게 좋으면서. 아직도 노래를 부르면서. 그게 뭐라고, 그렇게 타고 싶으면서도 왜 타지 못하나. 왜 아직도 엄마 눈치를 보나. 지난주 아내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엄마 아빠도 왔었다. 양가 부모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인어른이 대뜸 내가 요새 다시 모터사이클을 타기 시작한다고 말씀하셨다. 눈치도 없는 양반. 아직 내 부모에게는 말 한마디 없었던 걸 모르고.



엄마는 당황했고 아빠도 당황했다. 그러다 아빠 얼굴엔 이내 화색이 돌았다. 10년 전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날 거라 말했던 그 순간처럼. 엄마는 날 외면했고 아빠는 사진을 보여달라 했다. 아빠의 눈이 반짝였다. 배기량이 어떻게 되냐, 브랜드가 뭐냐,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묻는 말에 친절히 다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아빠의 눈을 바라봤다. 선망의 눈, 동경의 눈이었다. 그때 알았다. 아빠는 모터사이클을 욕망하는구나. 내 욕망과 아빠의 욕망이 다르지 않구나. 나는 그놈의 기계 덩어리 맨날 타고 동네방네 싸돌아다니는데, 아빠는 그러지 못하고 있구나.

 


왜? 도대체 왜? 그냥 타면 되잖아. 그냥 하면 되잖아. 그걸 왜 못해? 돈이 없어? 죽을까봐 겁나? 엄마가 싫어해? 아니, 그게 왜 중요해? 그냥 하면 되잖아. 그게 당신의 기쁨이잖아. 왜 맨날 바보같이 동경하기만 해? 왜 맨날 바보같이 꿈꾸기만 해? 왜? 왜 그렇게 바보야? 왜 맨날 어제 같은 오늘을 살아? 왜 당신의 내일은 오늘과 같아야 해? 왜 10년 전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다른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왜 바보같이 10년 전 욕망이 아직 그대로인 거야? 강산이 변했는데, 당신 머리카락은 점점 새하얘져가고 있는데. 당신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그곳에는 어떤 것도 없다고. 그걸 왜 몰라. 왜 당신은 아직도 그대로야?

 


당신은 내가 존경하는 아빠지만, 바보야.



괜찮아. 나도 바보였어. 평생 동안 바보였어. 지금의 욕망을 외면했고, 두려워했고, 도망쳤어. 지금을 살지 못하고 미래를 살았어. 하지만 그 미래라는 건 없어. 지금 뿐이야. 지금 이 순간뿐이야.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도 행복할 수 없어. 지금을 잘 살아야 미래도 잘 살 수 있는 거야. 그걸 왜 몰라?

 


모르겠지. 모르는 게 당연해. 당신은 늘 미래만을 보고 살았으니까. 당신은 지금 이곳이 아닌 미래의 저곳에 있었으니까. 당신은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살아왔으니까. 당신의 욕망이 아닌, 부모의 욕망, 가족의 욕망, 세상의 욕망을 위해 살았으니까. 그게 당신 잘못만은 아니야. 다들 그게 정답인 줄 알고 살아가니까. 나도 그랬고, 당신도 그랬고, 당신의 부모도 그랬을 거야.

 


그런 상태에서 당신 스스로 알을 깨긴 쉽지 않을 거야. 66년 세월 켜켜이 쌓인 지층 밖으로 탈주하려 용기 내는 게 쉽진 않을 거야. 그래서 내가, 내 모터사이클이 당신에게 설레는 마주침이 되었듯, 내가 당신에게 모터사이클을 선물할게. 그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있어. 10년 전 당신이 날 도와주었듯, 지난 36년간 당신이 날 사랑해주었듯, 이젠 내가 당신을 도울게. 그게 당신의 보살핌에,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야.



당신만을 위하는 게 아니야. 나를 위하는 거야.


아빠의 첫 모터사이클
작가의 이전글 붕정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