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방학 때마다 영어 과외 선생을 했다. 수업의 시작은 숙제 검사와 영단어 퀴즈였다. 어느 날 내가 가르치던 고등학생은 퀴즈를 보다가 어느새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답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가 보다 했지만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단어 뜻을 적어내는데 계속 고개를 푹 숙일 필요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참을 수 없어 빠르게 일어나 학생 쪽을 내려다봤다. 책상 아래에 단어 뜻을 빼곡히 적어놓은 메모지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안방에 계시던 학생 어머니를 불렀다. 수업 그만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일순간 어머니도 학생도 표정이 일그러졌다. 학생 어머니는 내 어머니의 지인이기도 했기 때문에 수업을 그만두게 되면 두 분 사이가 불편해질 수도 있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학생이 어머니에게 꾸지람 들을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집을 나왔다.
어렸을 적 나도 같은 짓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친구가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한다. 정답보다 오답이 더 많은, 한순간의 실패를, 그만큼 왜소해진 한순간의 자존심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학생의 정직하지 못함이었다. 분명 학생으로서 자신과 선생 모두를 속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15년도 넘어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그날 관두고 나온 것이 후회되기도 한다. 어렸던 나는 학생의 정직하지 못함이 선생으로서 내 자존심을 훼손시켰다 여기기만 했고, 내 자존심을 앞세웠던 만큼 난 좋은 선생이 아니었다. 그때 내가 학생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면 내 자존심 따위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학생을 가르쳤다. 그 친구는 고등학생 때 제대로 공부를 못한 것이 일생에 한이 되었던 친구였다. 영어를 너무 좋아했고 조금 늦었지만 다시 열심히 배워서 호주에서 살고 싶어 했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정말 간절했다. 또래 친구들이 모두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그는 여러 사정으로 대학생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려는 간절함이 대단했다. 그래서 과외 선생인 내가 하라는 건 다 했다. 의문도 반항도 없이 필요한 모든 걸 다 했다. 심지어 내게 더 어려운 걸 가르쳐달라 부탁할 정도였다. 어렸던 그때의 나는 그 친구가 그저 열심히 하는 순한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것만으로 그 친구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친구는 욕망의 크기가 대단했다. 다시 일어서려는, 다시 일어서 꿈꾸는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의 크기가 대단했다. 그 친구라고 해서 왜 자존심이 없었겠으며, 그 친구라고 해서 왜 자아의 저항이 없었겠는가. 그와 나는 한살 차이에 불과했다. 한살 많은 이에게 선생이라 칭하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하지만 욕망의 크기만큼 다른 모든 것들이 사소해진 것이다. 모든 의심과 불신의 저항을 잠재울 정도로 욕망의 크기와 밀도가 절박함과 간절함으로 표현된 것이다.
나는 좋은 학생이었던 적이 없다. 내 자존심을 앞세웠던 만큼, 가르침이 내 자존심을 훼손시켰다 여겼던 만큼, 좋은 학생이었던 적이 없다. 학생이 제 자존심과 제 두려움만 앞세우면 제아무리 훌륭한 선생이 가르친다한들 방법이 없다. 선생이 아무리 타이르고 격려해도 학생이 배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선생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결국엔 선생이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잘 배우고자 한다면 절박함과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어쩌면 절박하고 간절할 때에만 배움이 시작되는 걸지도 모른다. 진정한 배움은 그 순간에만 일어나는 걸지도 모른다. 어떻게 배우는가,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는가, 내가 얼마나 똑똑한가, 그가 얼마나 잘 가르치는가와 같은 문제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것들은 배움의 기술에 불과할 뿐 배움에 대한 욕망 그 자체의 표현은 아니기 때문이다. 욕망이 기술을 끌고 가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따라서 자신이 지금 무엇을 욕망하는지,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지 제대로 아는 것, 자신의 욕망 앞에 한없이 정직한 것, 욕망 앞에 한없이 무력한 것, 그것이 배우는 이의 첫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