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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Nov 23. 2022

개 뼈따구 같은 소리

지난 며칠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간간히 꿈을 꾸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그날 하루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을 예전처럼 오래 붙들고 있진 않는다. 오래 붙잡고 있지 않다 보니 그것에 특별히 힘 뺄 일도 없다. 이런 평온은 전례 없는 것이라 낯설다. 일주일간의 금주 때문일까, 운동 때문일까, 아니면 그간 부지런히 써온 글 때문일까.


이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서 며칠간 글도 쓰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평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쓰고 있지 않으면 마음속에 문장들이 넘실대고 문장이 귀로 들리기까지 하는 것이 더한 고통인 걸 어쩌겠는가?


지난 글들을 통해 내 안에 있던 큰 유리조각 몇 개가 몸 밖으로 빠져나간 것 같다. 가벼운 몸과 평온한 마음이 그 증거다. 앞으로 얼마간 숨겨져 있는 유리조각들을 찾는 작업을 계속해나가야겠지만 그것이 예전처럼 두려움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이 작업이 굉장히 재밌기까지 한데, 그 이유는 살을 째고 껍데기를 열어봐야 유리조각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운 좋게 커다란 유리조각이라도 발견하고 그걸 조심스레 꺼내 종이 위에 올려두고 바라보는 쾌감이 어찌나 황홀한지, 이 수고로운 짓을 멈출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엑스레이나 CT 촬영 같은 쉽고 편한 마법은 없다. 유일한 방법은 절개다. 그것도 무마취로. 수술대에 누운 내가 환자고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집도의로서 복부 위에 32인치 모니터를 반사경 삼아 배를 가르고 유리조각을 찾아 나선다. 가끔 메스를 잘못 다뤄 혈관이라도 건드리는 날엔 배 안 가득 피가 고이고 모니터에 검붉은 혈흔이 낭자하다. 어떤 날엔 유리조각을 발견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럴 땐 뭐 별 수 있나, 껍데기 덮고 소독하고 마는 거지.


유리조각을 찾든 말든 수확은 분명히 있다. 아,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구나, 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보편성의 재확인이 그 보상이다. 내가 지극히 평범한 인간 중 하나일 뿐이란 지극히 당연한 자각과, 내가 품었다는 고민들, 내가 느꼈다는 고통들은 역사 속 선배들이 겪었던 것들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하다는 진심으로 겸손한 자각은, 되려 내가 그런 인간임에 안도하게 한다. 그만큼 비범해져야 할 당위도, 남들보다 빼어나야 할 당위도 힘을 잃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그런 당위 같은 건 없다. 평생 그것들에 저당 잡힌 삶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는데 당위는 무슨 개 뼈따구 같은 소리인가? 비범이란 것도 평범이란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하고 비교 대상으로 말미암아 그것보다 무언가가 빼어나면 비범하다는 것인데, 비교 대상이란 이들의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그리고 비범과 빼어남의 당위로 그들과 시답잖게 경쟁해서 구별 짓기라도 하겠다는 의미라면, 이게 무슨 남들 유니클로 입을 때 혼자 자라 입었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네.


오늘은 배를 째려고 자리에 앉긴 했는데 생겨먹은 게 너무 웃겨가지고 수술 불가다. 여기서 그냥 덮어야겠다. 비범과 빼어남 같은 건 없다. 우리 모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일 뿐이다. 꽃은 꽃이라서 예쁘고 나무는 나무라서 멋진 것처럼, 인간도 인간이라서 이미 예쁘고 멋지다. 그래도 남들보다 비범하고 싶고, 남들과 비교해 빼어나고 싶다면,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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