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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Oct 28. 2022

시간이 없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세상이 달리 보였다

내게 살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째깍짹깍

초침은 흐르고

분침도 시침도 흐르는데

그 모든 것들이 그저

지나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만큼 내가 가진 시간이

내게 주어진 시간이

내 존재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이렇게 누워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죽고 있다

내 끝이

내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알고 있다

나는 죽고 있다

문장의 여백 사이만큼

단어와 한숨 사이만큼

나는 이미 죽었다


분하기도 했다

한때는 왜 나인가

원통하기도 했다

한때는 왜 지금인가

분하기도 했다

지금껏 한 게 하나도 없는 것이

이룬 게 하나도 없는 것이

지금껏 한낱 먼지처럼

한낱 먼지로만 살아온 것이

한낱 아지랑이만 좇아온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서 모두를

그래서 모든 것을

원망하기만 했다


하지만 원망은 그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않음을

알았다


그렇지만 미움이 그 어떤 것에도

답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더 이상 이렇게

누워있을 수만은 없어서 이내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시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더 아름답게

더 멋지게

만들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니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지금 이것만이

지금 이 순간만이

지금을 더 아름답게

미래를 더 멋지게

과거를 더 소중하게

대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그럼에도 나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지금 이것만이

내겐 지금 이 순간만이

있음을 알기에

내게 그것 밖에 없음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음을

이제는 알기에

이제서야 알기에


지금 이것만이

지금 이 순간만이

내 유일한 구원임을 알기에

두렵지 않다


난 이미 한번은 죽었기에

지금의 죽음이

앞으로의 죽음이

더이상 두렵지 않다


시간은 가고 있다

째깍짹깍

째깍짹각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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