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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Nov 01. 2022

느껴야 할 때 생각해야 할 때

난 평소 생각이 많다. 길을 걸을 때나 음악을 들을 때에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나 홀로 운동을 할 때도,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어떨 땐 이제껏 한 번도 생각했던 적 없는 새로운 무언가가 떠오르기도 하고 과거의 어떤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이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생각이나 기억은 분명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분명 시작은 생각이었는데 그것이 기억이 되었다가 감정이 되었다가 생각이 되고 다시 감정이 된다. 이런 경우 감정은 후회, 분노, 미움,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많다. 



오늘도 길을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분명히 길을 걷고 있는데, 분명히 지금 내 몸은 길 위에 있는데, 나는 왜 생각을 하고 있고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있는가? 나는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생각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가?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나인가? 길 위에서 생각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나인가? 지금 이 순간의 나는 대체 누구인가?



니체는 산책하는 중에 집필 작업의 뼈대를 완성했다고 하면서 자연 속에 산책하며 드는 생각 만이 진리에 가깝다고 말했지만, 나는 니체가 아니다. 나는 둔재다. 그래서 나만의 진리를 찾아야 한다. 



생각이 많은 것은 많은 것대로 문제이기도 또 어떨 땐 문제가 아니기도 하지만, 생각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정이란 것은 대게 슬픔의 정서 위주이기 때문에, 슬픔에 허우적대다가, 슬픔 속에서 온갖 비극적인 드라마를 찍다가, 내가 정작 깊이 생각해야 할 때에 생각할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생각해야 할 때 생각할 힘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진짜 문제다. 어쩌면 나는 생각으로, 생각의 연속으로 내 힘을 계속해서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때에 불필요한 힘을 불필요하게 낭비하면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힘을 열성으로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진짜 문제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많은 경우 허탈하게 휘발되고 기억되지도 정리되지도 않아 그저 한때의 구름처럼 한때의 추억으로 허망하게 떠나가,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도 정리하지도 않아 그 어떤 것도 새로울 것 없는 것이, 그게 진짜 문제다. 



하지만 진짜 생각이란, 가치 있는 생각이란, 그것들이 제대로 기억되고 제대로 평가되고 제대로 정리되어 제앞을 향하는 생각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생각과 기억은 과거를 치밀하게 바라보고 냉정하게 닫고 희망차게 가열차게 미래를 열어야 한다. 그것이 생각의, 기억의 역할이다. 그래서 생각과 기억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열어야 한다. 과거에만 머물러 멈춰있거나 미래에만 막연히 기대하는 것은 지금의 생각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낭비하고 버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낭비하고 버리는 것이다. 



걸어야 할 때 걷고, 봐야 할 때 보고, 들어야 할 때 듣고, 만져야 할 때 만지고, 기억해야 할 때 기억하고, 웃어야 할 때 웃고, 울어야 할 때 울고, 생각해야 할 때 생각해야 한다. 느껴야 할 때 느끼고, 생각해야 할 때 생각해야 한다. 감성과 이성의 역할은 감성이 감성일 때 감성일 수 있게, 이성이 이성일 때 이성일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 집 강아지에게 생각이란 것이, 이성이란 것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녀석은 걸어야 할 때 걷고, 뛰어야 할 때 뛰고, 냄새 맡아야 할 때 냄새 맡고, 똥오줌 싸야 할 때 싸고, 먹어야 할 때 먹고, 핥아야 할 때 핥고, 안겨야 할 때 안기고, 앉아야 할 때 앉고, 누워야 할 때 눕고, 자야 할 때 자고,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난다. 강아지는 매 순간 밖에 없다. 지금 이때 밖에 없다. 강아지에게 정말 생각이란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강아지에게도 생각이 있다면, 강아지도 생각할 수 있다면, 강아지는 생각해야 할 때, 오직 그 때에만 생각할 것이다. 



강아지가 내게 다가왔다. 지금 내게 왔다. 이제 이 글을 닫고 강아지에게 가야겠다. 얼른 가서 만져야겠다. 만지기만 해야겠다. 만지면서 느끼기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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