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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Nov 05. 2022

발렌티노 핑크와 흔적

오늘도 모니터 앞에 앉아 기다린다. 내 안에 무언가가 터져 나오길 기다린다. 터져 나오지 않는다면 무언가 새어 나오길 기다린다. 삐죽하고 대갈통을 내보이면 그놈을 손가락 끝으로 잡아 쭉 뽑아 올릴 심산이다.



활자 없는 화면을 몇 시간째 가만히 앉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고역이다. 쓸거리가 몇 가지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멍청한 이유로 미루고 있다. 오랜 습관이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주제가 어떨 땐 몇 시간 만에 수천 자 글이 되어 휘몰아치듯 튀어나오기도 한다. 재밌다.  



글이 나오기 전에 제목이 먼저 나올 때도, 써야 할 특정 키워드나 주제가 먼저 나올 때도 있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써야 할 내용이 따라오기도 한다. 아무 거나 그냥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옆 길로 새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글 하나가 나올 때도 있다. 비슷하게, 예전 글을 몰아쳐 읽다가 그곳에서 새 글의 단서를 발견하기도 한다. 또는 책에서 이끌리는 단어나 문장, 개념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삶이 글을 낳기도 하고, 어떨 땐 글이 글을 낳기도 한다.



문단 끝이 새로운 문단을 불러오지 않을 때 호흡이 길어진다. 막막하기도 하다. 이다음은 무엇이 오는가, 이다음엔 무엇이 있는가 자문한다. 하지만 몇 시간째, 며칠째 그 무엇이 없을 때 막막하다. 이런 것도 많이 하다 보니, 이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 그 자리에 커서만 꿈뻑꿈뻑 졸고 있다.



예전에 한 친구가 나보고 참 여유롭다 했다. 그간 만났던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고 했다. 여유롭다. 내가 여유롭다? 피식 웃었다. 그녀의 세상에서는 내가 그렇게 보였나 보다. 그녀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미술관 큐레이터였던 점에 난 호기심이 동했었다. 하루 종일 검은색 바탕의 화면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더 이상 관심 없는 외계어가 난무하고 어느덧 내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일자적 욕망이 가득한 곳에 마음이 뜬 상태였던 내게 그녀는 마치 정반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난 그 삶이 몹시 궁금해졌다. 좀 더 정확하게는 환상을 품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섹시하게 보이기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섹시한 직업이었던 것이지, 섹시한 사람이 아님을 이내 깨달았기 때문이다.



발렌티노 핑크로 온몸을 치장하고 온 세상 사람들한테 관심받고자 하는 것이 그녀의 최고 욕망임을, 예술은 그저 직업에 불과함을 금방 알았기 때문이다. 발렌티노 핑크를 그때 처음 알았다. 명품마다 고유의 색이 있음을 내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친절하게도. 예술과 NFT의 조합, 이것이 앞으로 가져올 비즈니스 가능성에 대해 알려줬다. 친절하게도. 어느 작가는 어떤 루머가 있고 어느 작가는 성격이 어떻다고 업계 인사이더 정보를 말해줬다. 친절하게도. 내가 단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것을 끊임없이 말해줬다. 아주 친절하게도.



다시 회사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회사와 정말 먼 곳인 줄 알았는데, 깨어보니 회사 안이었다. 한동안 현기증에 시달렸다.



그 친구가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한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그런 모습이었을 테니까. 이해한다. 하지만 그녀는 내 안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사상이건, 내게 의미 있는 존재였다면  안에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언어를 덮어쓰고  취향을 덮어쓰고  관점을 덮어쓰고  욕망을 덮어쓴다. 흔적의 골이 깊을수록, 내게   의미를 가진 존재임이 선명해진다. 의미 있는 타자만이  덮어쓴다. 내가 그런 타자였던 적이 있었을까?



흔적은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제모습을 내보이기 시작한다. 내게 의미 있는 몇 명의 타자들이 떠오른다.



발렌티노 핑크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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