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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Nov 09. 2022

두려움, 원망, 에고의 3중주

난 참 오래 두려움 속에 살았다. 두려움으로 숨 쉰 삶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려움으로 점철된 지난 삶이 눈앞에 펼쳐진다. 두려움으로 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던가? 두려움으로 난 무엇이 되고 무엇이 못되었던가? 두려움 이 녀석에게 오늘도 싸움 한판 걸어볼 요량이다.



강렬한 두려움의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1학기였던 1996년 5월 초를 향한다. 안양에 살던 우리 가족은 아빠의 일 때문에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 슬펐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 앞 삼성천은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이면 여지없이 불어났고 물은 맑았다. 그곳에서 동네 친구들과 물놀이하는 것도 감자를 구워 먹는 것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때 한번 전학을 했던 것이 상처로 남았던 걸까. 전학이라는 단어조차 싫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새로 전학 간 날 5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 앞에 섰다. 잔뜩 긴장한 채 짧은 인사를 했다. 그 후 몇 주간 밤마다 울며 잠들었다.



상실의 슬픔, 새로운 곳의 두려움은 초등학교 4학년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벅찼던 모양이다. 부모에게 내 슬픔을 제대로 말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다. 친구들 생각에 밤마다 혼자 울었다.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어두운 방 한쪽 벽면에 옅게 비치던 알루미늄 방범 샷시의 십자 배열 그림자, 그 어둡고 습한 장면. 그곳에서 동트는 시간마다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내 눈동자를 덮칠 때쯤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놀라서 깼다. 같은 꿈이 고등학생 때까지 잊을만하면 반복됐다.



내 안에 슬픔과 두려움의 감정을 어찌할 바 몰랐다. 부모를 원망했다. 미움으로 두려움을 이겨보려 했다. 왜 안양에서 부산까지 이사 가야만 하나, 이사 갈 거면 아빠 혼자 갈 것이지 왜 내가 친구들과 헤어져야만 하나, 같은 생각을 많이 했다. 이 모든 게 다 아빠 탓, 엄마 탓이라고 여겼다. 미움과 두려움은 이때부터 자의식 과잉, 자의식 과몰입, 피해의식 과몰입, 과거 과몰입, 부정 정서 과잉, 자기애 과잉, 그냥 싹 다 과잉, 그냥 싹 다 몰입, 비관주의, 회의주의, 허무주의, 염세주의의 누런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그 당시 부모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부모라고 해서 부산으로 이사 가는 것이 마냥 달가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빠는 당시 서울의 대기업을 나와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고향이 그곳이었으며 이사에 앞서 2년가량을 주말부부로 지냈다. 그래서 부산으로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것은 그 당시로서도 합당한 선택이었다. 나라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동래에서 2년 반 살았을 즈음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동래중학교로 배정받았다. 학교 친구들 중 상당수가 같은 학교로 가게 되어 좋았다. 하지만 입학도 하기 전에 우리 가족은 해운대로 이사를 가게 된다.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학교로. 다시 친구들을 잃었다.



이제 막 14살이 되었다고 좀 큰 걸까, 아니면 좀 익숙해진 걸까. 울진 않았다. 대신 나는 슬슬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다. 내 안에 숨는 것이 알 수 없는 이 세상, 비관적인 이 세계에 온몸 그대로 노출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어린 나이이지만 당시 나는 친구와 언젠가 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를 사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다시 전학을 가든 그 친구가 이사를 가든 헤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언젠가 헤어질 친구니까 새로 친구를 사귈 필요도 없다고 믿었다.



헤어지면 아프니까 애초에 만나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남보다 헤어짐만 생각했다. 아플 일은 애초에 만들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헤어짐이 아프니 만남도 제거하는 이런 지극히 극단적이고 유아적인 사고방식은 언젠가 죽으니까 살 필요도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친구들은 언젠가 헤어질 존재로, 나는 슬픈 피해자로, 부모는 원인 제공자, 가해자로서 원한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단순 구도는 더 이상 내가 이리저리 고민할 필요가 없어 지적 편리함과 정서적 편안함을 준다. 그래서 친구는 무용한 존재, 나는 피해자, 부모는 가해자로 역할과 정체성을 부여하고 이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중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고 좋은 추억도 많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좋은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욕망한다. 곧이어 학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독서실 바깥에서 친구들이 경찰과 도둑 놀이한다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귓구멍에 이어 플러그를 쑤셔 넣었다. 하루는 독서실 바깥에서 농구공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CD 플레이어 볼륨을 높였다. 나도 사실은 밖에 나가 같이 놀고 싶었다.



그 후 나는 욕망했던 좋은 고등학교로 갔다. 집에서 먼 학교여서 중학교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모든 게 새로 시작됐지만 중학생 때와 동일한 패턴의 반복이었다. 1학년 친구들과는 재밌는 추억도 많다. 하지만 막 고등학생이 된 나는 곧바로 좋은 대학을 욕망한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MP3 플레이어 볼륨을 높인 채 스스로를 책에 파묻는 짓을 3년간 매일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두려운 만큼 무언가에 기대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허무해질 테니까. 에고의 테두리는 두터워져야만 하고 세상과 나를 구분할 수 있는, 친구들과 나 사이를 가르는 벽을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앞서 쓴 각종 과잉, 각종 과몰입, 각종 -주의 등 병세가 완연히 깊어지기 시작한다.



고된 시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대학이라는 미래의 환상, 그것의 소유욕, 그것을 가진 나와 그렇지 못한 이들의 구별, 멸시, 나는 특별하고 너는 그렇지 못하다는, 자기애 과잉을 넘어선 태초의 전우주적 자기애 빅뱅과 같은 망상 때문이었다. 환상과 망상이 깊고 강할수록 현재의 두려움이 작아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다. 그로 인해 현재의 두려움은 작아 보여 안도하지만 그것도 잠시, 더 깊고 강한 환상과 망상을 창조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현재의 왜소함, 현재의 두려움을 견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마약 중독의 기제와 유사하다.



자아는 타자와 구별되기 위해 특별함을 소유하고 싶고 미래에 환상과 망상을 투척한다. 환상과 망상이 특별할수록, 자아는 만족하는 것 같지만 그것도 잠시, 자아는 더욱 불안하다. 미래와 현재의 거대한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자아는 무언가 단단한 것에 기대어 서고 싶지만, 밖에서 찾을 수 없으니 안을 보고 그곳은 다만 불안해, 할 수 있는 것은 자아를 비대하게 살찌워 나를 채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두려움의 해소가 아닌 확대 재생산에 불과해, 시간 갈수록 자아는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할 방편을 좇기 시작한다. 그것은 보통 쾌락 추구의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런 이유로 고등학생 시절 나는 그렇게 게임과 포르노에 몰두했던 것이다.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뉴욕으로 향한다. 대학 시절 역시 지난 역사와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으나 이때부터 에고는 그간의 착취적이고 가학적인 방식에 정당성을 확보하고 승기를 굳히기 시작한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얻었기 때문에 이 같은 방식에 의문을 품기란 더더욱 어려워진다. 한껏 비대해진 에고는 승리의 왕관을 거머쥐었다.



대학 시절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낙하산도 없이 추락하다가 눈동자가 땅에 닿기 직전 깼다. 매번 같은 꿈이었다. 어렸을 적 천장이 무너지는 악몽과 대학 시절 하늘에서 떨어지는 악몽은 위아래만 바뀌었을 뿐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을 암시한다. 상승하는 과정에 추락의 두려움, 상승 후 추락의 두려움이다. 즉 이때 두려움은 각각 욕망의 좌절과 욕망하여 소유한 대상의 상실로 봐도 무리가 없다.



비대한 에고는 탐욕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두려워한다. 두려워서 더 큰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고 소유하면 그것을 행복이라 이름 붙인다. 소유한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소유한 것을 뺏길까 두려워한다. 두려운 만큼 소유한 것을 지키려 노심초사한다. 소유했던 것을 상실하면 그것을 불행이라 이름 붙인다. 지난 삶의 나는 소유와 나를 동일시했다.



바보. 난 그 어떤 것도 소유한 적이 없는데.



다음 글에서는 소유욕과 연애, 결혼제도 이 세 가지를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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