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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Nov 15. 2021

대리인의 공허함

거의 4개월 만에 휴가를 냈다. 자율 휴가제도가 무색하게도 그간 쉬지 못했다. 7개월 동안 프로젝트에 매달려왔기 때문이다. 쉬라 마라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나는 쉬지 않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에 드는 생각은, 



"뭐하러?" 



쉼 없이 달려와보니 나만 바보 같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내었는데 시작할 때 기대했던 성취감은 없다. 동료들의 인정? 경영진의 치하? 그런 것도 없다. 인정받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도 아니었고 그저 내게 주어진 프로젝트였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했다. 대표의 기나긴 설득 끝에 프로젝트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7개월간 달려왔다. 그동안 대표는 힘든 일을 시킨 것이 조금은 신경 쓰였는지, 내 눈치를 종종 보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곤 통쾌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끝이 다가오니 대표는 이제 다음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내게 할 일 목록을 하나 둘씩 던지기 시작한다. 아! 그간 내가 잊고 살았었다. 프로젝트 다음 또 다른 프로젝트가 온다는 걸, 그리고 대표와 나의 관계는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걸.



프로젝트 끝에 다다르니 그 어떤 것도 없다. 그저 다음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 공허하다. 타인의 욕망의 노예, 대리인으로 사는 자는 공허함을 피할 수 없다. 내가 한다고 믿는 것은 사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에 스타벅스 회장 말마따나 내 마음을 쏟아부은들 내 것이 아닌 게 내 것이 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 되진 않는다. 날 사랑하지 않는 자의 인정과 치하는 얼마나 허망한가. 회사에서의 인정은 사실상 내게 다음 일거리를 던지기 위한 입 발린 소리일 수밖에 없다. 그것들을 욕망하고 대리인이자 노예의 삶에 자긍심을 느끼며, 하루하루 더 나은 노예, 더 효율적인 노예가 되고자 살아온 나 자신은 또 얼마나 볼품없는가.



아무리 좋게 생각해봐도 회사는 착취 구조 그 자체이다. 사장은 직원을 착취하고 직원은 다른 직원을 착취하며 투자자는 사장을 착취한다. 회사에서는 그 누구도 착취의 고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분기별 달성 목표를 세우는 자리, 서로 아이디어를 열광적으로 던지며 자신의 스마트함을 수컷 공작새처럼 뽐내는 자리에서 나는 씁쓸했다. 노예들이 모여 노예 자신들의 목표를 세운다는 것이 씁쓸했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몇 가지 목표를 세웠더니, 대표가 던진 목표 하나에 기존의 목표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대표의 목표가 곧 팀의 최우선 목표로 상정되었다. 



대표는 기존의 목표들을 뒤엎고 무화시킬 힘이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똑똑함이건 열정이건 뭐건, 자본의 힘 앞에서는 모두 무력하다. 그 힘 앞에 살아남는 것은 결국 대표의 목표와 가장 일치하는 것, 그리고 대표의 목표에 무력하게 봉사하는 것, 그뿐이다. 대표의 목표란 결국 자본의 목표일 수밖에. 안타깝지만, 다음 분기, 그다음 분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또 구조만, 대표만 욕할 수 있나. 나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그간 얼마나 많이 동료들을 착취했던가. 내가 당장 필요하다는 이유, 궁금하다는 이유, 회사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이유 등, 갖가지 이유로 동료들을 괴롭혔다. 협력이라는 미명 뒤에 비겁하게 숨어 동료들을 착취했다. 내가 하면 협력이고 남이 하면 착취라는 내로남불의 극치였다. 그래서 난 직접적인 착취자는 아니더라도 착취자의 적극적인 협력자 쯤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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