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에 샀으니까 만 7년 가까이 사용한 가죽소파가 있다. 그 당시 대중화된 지 얼마 안 된 리클라이너 소파였다. 가죽이 어찌나 보드라운지 그 위에 누워있는 게 참 좋았다. 그 위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우리 집 강아지 호두랑 놀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웃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다. 함께한 시간 때문일까, 난 이 소파가 좋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파 끝쪽 가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처음의 반짝거리던 광택과 맨살 같은 부드러움을 잃고 모래알 같은 속살을 드러냈다. 소파 나이와 같은, 공놀이를 좋아하는 호두가 소파 위에서 공을 쫓아 부엌 쪽으로 뛰어내려 간다고 발톱으로 가죽을 세게 움켜쥔 탓도 있을 것이다. 소파 위에 앉고 눕고를 반복하면서, 그리고 소파가 그 기능처럼 앉고 눕고를 반복하면서 여느 가죽이 그렇듯, 닳고 헤지기도 했을 테다.
난 그 위에 앉고 누울 줄만 알았지 소파를 마른 천으로 정성스레 닦아준 적이 없었다. 거실 한편에 늘 있었고 늘 있을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건조하든 갈라지든 찢어지든 따위에 관심조차 없는, 소파는 내게 정물이었고 기능이었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소파는 아무 말도 없었고 날 밀어내지도 않았다. 침묵 속에서 자신의 연약한 속살을 내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난 그 위에 내 몸을 뉘이고 또 뉘일 뿐이었다. 결국 가죽의 맨살은 얼룩을 머금기 시작했고 처음의 뽀얀 살결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어두운, 더 검은 얼룩들. 시커먼 버섯의 포자들. 나는 내 상처를 되뇌고 또 되뇔 뿐이었다. 닳고 닳아 해져버린 네 얼룩, 네 상처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