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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Jun 08. 2023

결혼제도와 자본주의

분열의 기록

"많이 성취하며 살아라!"



결혼식에서 부부의 앞날을 위해 한 말씀해 달라는 사회자의 부탁에 장인어른이 외치셨다. 하객들은 부부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장인어른의 선창을 따라 외쳤다. 난 아직도 그날의 함성을 똑똑히 기억한다. 맞은편에 선 내가 느꼈던 그 어색함과 난해함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많이 성취하라는 그날의 축언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그 후 몇 년간 장인어른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면서 그날의 축언은 그의 진심이었음을 알았다. 그에게 있어 그 말은 그가 타인에게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언사다. 하지만 왜? 왜 결혼식에서 입학식이나 졸업식에서나 할 말을 들어야 했는가? 왜 결혼은 앞으로 있을 성취의 발판이 되어야 하는가?



"큰 숙제 하나 해치웠다."



서른이 훌쩍 넘는 나이까지 방황하던 막내아들을 느지막이 장가보내는 데 성공한 큰고모의 소감이었다. 그날도 분명히 기억한다. 숙제라니, 아들 결혼이 고모에게 숙제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성취나 숙제나 사실 그들은 별 뜻 없이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왜 결혼이 성취나 숙제라는 단어들과 엮이는가? 위 두 문장은 각각 "결혼 후"와 "아들의 결혼이라는"이 생략되어 있으나 맥락상 각 문장에서 "결혼"이란 개념은 중심에 있다. 중심점 옆에는 각각 "성취"와 "숙제"가 있고 나머지 단어들은 모두 생략 가능하다. 그러면 "결혼"과 "성취", 그리고 "결혼"과 "숙제"의 단어 쌍이 강결합된 채 남아있다. 장인어른이나 고모나 이 사회의 주류다. 두 분 모두 부자다. 난 이들의 심리가 매우 궁금하다!



결혼은 성취와 숙제... 섞어보자. 결혼-숙제-성취, 성취-숙제-결혼, 아니지, 결혼이 중심점이 되어야 한다. 성취-결혼-숙제, 오, "숙제-결혼-성취"가 눈에 띈다. 여기에 시간 개념을 부여해 보자. 편의를 위해 각기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을 따른다. 그럼 "숙제-결혼-성취"의 단어들로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만들어볼 수 있다.



1. 결혼 전에는 결혼이 해야 할 숙제이고, 결혼 후에는 성취해야 한다.

2. 결혼은 해야 할 숙제이고 숙제를 마쳤으니 이제 성취해야 한다.

3. 결혼은 숙제인데 숙제를 했구나, 그럼 이제 성취라는 숙제를 해보자.



하하하하하하하 맥락이 이어진다. 위 세문장을 하나로 합쳐 매끄럽게 만들고 양념을 쳐보자.



"결혼이란 숙제가 끝났다. 다음 숙제, 성취 나간다."



이런. 서늘한 결론이다. 결혼은 성취의 발판이 될 숙제다. 결혼이라는 제도권 진입의 대표적인 상징을 얻었으니 제도권 내에서 위로 올라가야 한다. 돈과 명예가 젖과 꿀처럼 흐른다는 그 위로. 우리 회사 투자사 중 한 곳의 대표 파트너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More! More! More!"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 MBC 성공시대에서 성공한 기업인들의 상투적인 성공의 원인 드립.



"이제 결혼도 했으니 내가 당신 호강시켜 줄게!"

- 옛날 드라마에 나왔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남편이 단칸방에서 자주 쳤던 드립.



모두 같은 맥락이다. 아, 결혼은 돈과 명예에게 포섭되어 있다. 결혼이 곧 자본주의다. 결혼은 희생양이자 공범이다. 주범은 부다! 자본주의는 결혼이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굴러가려면 사람들이 결혼해야 한다. 안정감, 소속감과 같은 허상을 투입해서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리고 애들을 낳아야 한다. 미래의 노동자들을 가정에서 훈육해야 한다. 교육해서 말귀를 더 잘 알아먹게, 매를 휘둘러 권력자에 순응하는, 똘똘한데 유순한 노동자를 생산해야 한다. 좋은 대학에 보내서 자본주의 바퀴를 더 가열차게 굴려야 한다. 삼류대학에 간 아이들은 내팽게치고, 이류대학에 간 아이들에겐 작은 바퀴를, 일류대학에 간 아이들은 큰 바퀴를 쥐어주고, 큰 바퀴를 굴리는 대단한 사람이라 칭찬하고, 더 큰 바퀴를 꿈꾸도록 독려하고, 그 아이들이 장성하면 또 결혼을 하고, 애들을 낳아서, 바퀴를... 아...



오랜 숙제가 풀렸다. 결혼제도를 공격하기 위해선 결국 자본주의를 공격해야 한다. 결혼제도 하나만으론 안된다. 아, 길이 멀어 보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지점이 어디더라, 아 그렇지, 강남좌파와 같은 경계인의 땅이다. 두 번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는 자칭 비혼주의자의 징징거림 너머 더 이상 결혼이 필요하지 않은 돌싱, 제도의 속박으로부터 빗겨 나있는 자, 두 사람 사이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사회에 제도나 관습, 법과 같은 공권력을, 사회의 시선을 연루시키지 않는 자, 이를테면 탈-혼주의자와 같은 경계인. 그렇지,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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