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추운 날 맥주가 마시고 싶은 건데

by 정도비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10월 말인데 겨울 패딩을 꺼내 입어야 하는 날씨가 되어 버렸다. 낮에 만난 친구와 한참을 가을 없이 겨울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떠들다가 집에 왔다. 해질녘 집에 들어오니 바깥에서 으슬으슬했던 몸이 사르르 녹고 전기장판 틀어놓고 이불 속에 쏙 들어가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해는 완전히 지고 밖은 이제 더 추워졌겠지만 나는 괜찮다. 따뜻한 이불 속에 있으니까.


그런데 같이 사는 남자가 빌런이 된다.

“여보 나 맥주 마시고 싶어. 마트 가자. 아니다, 너~무 추우니까 집 앞 편의점 가자.”

“오빠, 너~무 추운데 맥주가 왜 마시고 싶은 건데.”

“주말에 우리 여행 갔다 왔잖아. 뒤풀이를 해야지.”

“주말에 갔다 온 여행 뒤풀이를 왜 화요일에 하는 건데. 싫어, 추워서 안가.”

“제발 한 번만 같이 가주라. 응?”

“여행 갔다 와서 피곤하다더니 술은 뭔 술이야.”

“나 하나도 안 피곤해.”

“안 피곤해? 그럼 내일 퇴근하고 나랑 저녁에 예쁜 카페 놀러 갈래?”

“음... 그러니까... 일단 편의점부터 가보자.”


짧은 실랑이 속에 나는 강경하고 남편은 포기하고서 풀이 죽어 옆에 누워 폰게임만 하고 있다. 이제는 그렇게 가고 싶으면 혼자 다녀오라는 말은 하지도 않는다. 신혼 초에 혼자 다녀오라고 했더니 혼자 술 사러 가면 사람들이 불쌍한 홀애비인줄 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절대 혼자는 가지 않는 것이다.


꼭 나를 부려 먹어야 직성이 풀리지, 아오, 하며 옷장 문을 연다. 사이좋게 각자 패딩 중에 가장 두꺼운 패딩을 걸쳐 입고 편의점에 다녀온다. 패딩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캔맥주 두 개, 과자 한 봉지 들고 집에 돌아오는 남편이 많이 행복해 보인다. 나는 거의 나라를 구한 급의 큰 일을 해준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며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간다. 식탁에서 캔맥주 따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시월의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