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다녀왔다. 아파트 매매를 위해 대출 신청하는 날이다. 전세로 살던 신혼집에 집주인이 실거주로 들어올 테니 나가달라고 했고, 신혼 3년이 채 안된 시점에 이런 일이 생기자 앞으로 계속 이사를 다니기는 힘들 것 같아 내 집 마련을 결정했다. 집 살 거라고 이 집 저 집 구경하러 다닐 때는 들떠서 일단 지르고 나면 대출이야 얼마든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우리 이름으로 억 단위의 빚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긴장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지 어른이 된 것 같은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대출 신청 해놓고 은행을 나서니 이제 진짜 우리 집이란 게 생긴다는 실감이 좀 난다. 뭐야, 진짜 어른 같잖아. ‘우리 집-스위트 홈’에서 남편이랑 재밌게 살아야지 하고 흐뭇해한다.
어린 시절 온전한 집이라고 하기는 힘든, 사무실에 딸린 두 칸짜리 방에 네 식구가 살다가 내가 열 살이 될 무렵 처음으로 아파트를 사서 입주를 했다. 집에 발을 딛고 들어가는 순간 너무 좋아서 “뭐야, 이게 진짜 우리 집이야?”하고 소리쳤던 열 살의 내가 떠오른다. 그때 엄마, 아빠, 할머니- 어른들이 기분 좋게 깔깔 웃었던 장면이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삼십 대의 엄마도 처음 장만했던 그 집에서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까.
그 뒤로도 돈이 없어서 그 집에 온전히 살지 못하고, 우리 집은 전세를 주고 더 먼 동네 더 작은 집에 몇 년씩 전세를 살다가 오곤 했었다. 어린 나는 우리가 돈이 없어서 이사 다닌다는 사실도 모르고 이 동네 저 동네 이사를 따라다녔다. 남편도 사정은 마찬가지라서 어릴 때 작은 집에 세 들어 살던 시절을 떠올리며 시부모님께서 고생하셨던 세월들을 이야기한다. 그 시절 우리 또래- 삼, 사십 대였던 부모님들은 자식 둘 키우면서 기댈 곳 없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 삶의 무게가 감히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나는 아직 부모에게 치대는 늙은 딸년이라 대출 신청하고 와서 엄마 아빠 불러내서 대출금 갚으려면 이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푸념을 실컷 하면서 매운탕이나 한 그릇 사주고 왔다. 내 집 마련의 축하와 응원을 빙자해서 철없는 늙은 딸 하소연 들어주다 집에 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보니 우리 부모님의 인생 과업은 감정노동이란 측면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걸로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늙은 딸은 입주할 날을 설레며 기다린다. 대출 잔뜩 낀 홈 마이 스위트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