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센터에서 이사 견적을 보러 방문한다길래 그전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좀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이 참에 오며 가며 봤을 때 거슬리던 남편 물건들 좀 싹 버리라고 할 작정이다. 그래서
‘오빠 안 신는 신발 좀 버리라고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신발장을 열어보니 내 신발들이 수북,
‘오빠 안 입는 옷들은 평소에 좀 버리라니까.’ 생각하며 옷장을 열어보니 내 옷들이 수북,
‘오빠 안 쓰는 술잔 또 엄청 모아 놨겠지’하며 그릇장을 열었더니 내가 모아놓은 온갖 그릇들이 수북하다.
아 이럴 수가, 하루 종일 안 오다가 꼭 남편 퇴근 후에 도착하는 나의 택배박스들을 볼 때만큼이나 당황스럽네.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길 잘했다고 안도한 후(말했으면 얼마나 역공을 당했을 것인가!) 남편에게 오늘은 필요 없는 물건들(대부분 내 물건들이란 말은 물론 하지 않았다)을 싹 버릴 것이니 적극적인 협조 부탁한다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착한 남편은 꼭 오늘 해야 하냐며 의욕 없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 뜻에 따라주었다. 그리고 남편이 안 쓰는 우리의 공공물건들-찢어진 요가매트, 때 탄 러그, 시들어 죽은 화분 등을 낑낑거리며 버리는 동안 나는 빠르게 나의 산더미 옷, 신발, 그릇들을 정리했던 것이다. 아, 내가 쟁여놓고 살았던 짐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부끄럽게도 나는 나 정도면 미니멀리스트라고 철저하게 나 자신을 오해하며 살았다.
몇 달 전 엄마와 뮤지컬을 보러 갔을 때 엄마가 굿즈를 사며 나에게도 기념으로 사 줄 테니 하나를 골라보라고 했다. 나는 전셋집에 살면서 언제 이사 가야 할지 모르는 처지에 쌓아놓고 살기 싫다며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던 것이다. 내가 좀 미니멀리스트잖아 라고. 그랬더니 엄마가 단박에 “미니멀리스트라고 하기엔 옷이랑 신발이 너무 많다. 그냥 굿즈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자.”라고 하길래 그땐 너무 웃겨서 막 웃었는데 짐정리하며 깨닫는다. 오 어머니, 역시 딸을 객관적으로 잘 보시는군요! 나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자칭 미니멀리스트였다. 이사 간 집에서는 진짜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잠시 꿔보는 짐 정리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