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를 부탁해

by 정도비

남편이 베란다 쪽에서 분주하다. 분리수거를 다녀와야겠단다. 따라가 주면 아이스크림을 사 줄 테니 같이 가자고 한다.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귀찮아 고개를 저었다. 그랬더니 따라가 주면 다녀와서 다리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조건을 바꾼다. 그건 좀 솔깃해서 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선불로 먼저 해달라고 했더니 남편이 제안을 받아들여 협상이 타결되었다.

소파에 누워 남편에게 다리 마사지를 받으며 나는 생각에 빠진다. 분명히 신혼 때는 내가 분리수거를 따라가는 일이 일절 없었다. 남편은 집안일 중 분리수거는 자기 몫이라고 했다. 분리수거 짐이 많아 잔뜩 들고나가야 하는 날에도 연약한 여보는 이런 일 하는 거 아니라며 같이 가서 도와주려는 나를 절대 따라오지 못하게 했었다.


지금은 혼자 가면 심심하다면서 버릴 게 별로 없는 날도 아이스크림, 과자, 마사지 등 내가 좋아하는 조건을 걸며 기를 쓰고 나랑 같이 가려고 하는 그 변화가 황당해서 마사지를 받으며 물어본다.

“오빠, 예전에는 내가 따라간다고 해도 절대 못 오게 하더니 왜 이제는 나를 못 데려가서 안달이야?”


남편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는 여보는 옛날에는 내가 오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따라온다고 하더니 왜 이제는 안 간다고 그래?”

남편 말도 너무 맞는 말이라 나도 깔깔 웃는다.


마사지를 실컷 받고 나서 분리수거장에 갔는데 버릴 건 별로 없다. 그런데 오늘은 분리수거장에 경비 아저씨가 계셔서 인사를 나누고 아저씨 옆에서 분리수거를 했다. 왜 분리수거장에서 경비 아저씨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다. 다시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는 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어쨌든 분리수거를 잘 끝내고 남편한테 편의점 아이스크림도 하나 얻어먹으면서 집에 돌아온다.


결혼해 살면서 부부는 변하는가? 결론은 그렇다, 변한다. 하물며 사소한 분리수거 장면조차 이렇게 변하지 않는가.

그런데 뭐 변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하고 아이스크림을 야금야금 먹으며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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