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by 정도비

대장 내시경을 예약한 탓에 3일 전부터 흰 밥, 생선, 카스테라 정도만 먹으며 식단 관리를 해 온 남편은 한껏 예민해져 있다. 대구탕을 먹으러 가서는 흰밥과 생선만 먹어야 하는 처지에 깍두기를 보며 한 점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다. 그 앞에서 깍두기를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놀리는 나를 보고 족제비 눈이 된 남편은 방금 대구탕에 밥 두 그릇을 말아먹었는데도 자꾸 먹은 게 없어서 힘이 없단다. 아무래도 기분 탓이 아닐까 하고 중얼거렸더니 다시 족제비 눈이 되어 나를 째려본다. 사람은 김치를 먹어야 힘이 난다나.


회사에서는 점심시간에 전화가 와서 식당 밥은 하나도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 카스테라를 사 먹었다고 처량하게 말한다. 내일 먹을 카스테라도 필요하다고 과장되게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길래 내가 왕창 사갈게 했더니 백설기도 먹을 수 있다고 황급히 덧붙인다. 사놓으라는 소리다. 그리곤 그날 저녁도 대구탕에 밥 두 그릇을 먹고 디저트로 내가 사놓은 카스테라랑 백설기를 먹고 그래도 계속 배가 고프다고 우는 소리를 한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그리곤 내가 부엌에서 조금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내도 뭘 먹으려는 거냐며 족제비 눈이 되어 방에서 튀어나온다. 출출한데 라면이나 하나 끓여먹을까 하고 서랍을 열어 보고 있었던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황급히 서랍을 닫는다. 24시간 부엌에서 나는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남편 덕분에 내시경 안 하는 나까지 제대로 못 먹고 예민해져서, 어우 이 놈의 건강검진 언제 끝나나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부부는 운명공동체라더니 이런 것까지 해당될 줄이야.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건강검진날, 대장내시경이 끝나고 아직 수면마취가 깨지 않아 쿨쿨 자고 있는 남편 대신 결과를 들으러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다른 특별한 사항은 없고 장을 깨끗이 잘 비워왔다고 칭찬해 주신다. 아직 잠이 덜 깬 남편을 부축해서 집에 오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칭찬하더라고 전해주니 몽롱한 목소리로 “고생해서 식단 했는데... 다행이네...”하고는 택시 뒷자리에서 잠이 든다. 삼 일간의 난리법석이 드디어 끝났다. 저녁엔 오랜만에 배달 음식으로 자축해야지 생각하며 그동안 시중드느라 힘들었던 나도 남편 옆에서 같이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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