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병

by 정도비

등산을 다녀왔다. 남편은 산을 좋아해서 학생 때부터 혼자 동네 뒷산을 오르내렸고 어른이 된 후에는 친구들과 좋은 산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나한테도 호시탐탐 같이 등산을 가자고 꼬셨지만 그때마다 나는 10미터 이상을 걸어서 올라가면 급격한 고산병이 와서 갈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래서 남편과 한 번도 같이 산에 같이 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의 꼬심이 만만치 않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거의 정상까지 다 올라가서 한 삼십 분 정도만 평지와 비슷한 길을 걸으면 된다나. 단풍이 절정으로 든 지금 케이블카에서 그 풍경을 보면 얼마나 예쁘겠냐고 달콤한 말로 나를 유혹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산이라면 왠지 고산병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처음으로 남편을 따라나섰다.


남편 말은 사실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보는 단풍은 절경이었고 걷는 시간과 난이도도 거의 산책 수준으로 적당하여 내 마음은 아주 흡족했다. 아름다운 가을날 자연 속을 걸으며 흥에 취한 나는 하지 말았어야 할 약속을 하고 말았다. 등산 너무 좋다! 다음에 또 오자! 내 말에 쾌재를 부른 남편은 바로 다음 주에 다시 등산을 가자며 이번에는 케이블카는 없지만 아주 쉬운 코스를 걸어서 올라가자고 했다. 내가 미심쩍어하자 정말 쉬운 코스라며 난이도를 상중하로 매긴다면 초보자도 갈 수 있는 하 코스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케이블카 코스가 너무 만족스러웠기에 다시 한번 남편을 믿어 보기로 하고 다음 주가 되어 산 초입에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등산을 시작하고 3분쯤 지나자 남편이 하는 말, “등산 시작했으니까 이제야 하는 말인데 내가 어젯밤에 자기 전에 챗gpt한테 우리 코스 난이도가 뭐냐고 물어봤거든? 그러니까 중상 코스래. 이상하지? 분명히 하일텐데.” 그다음 벌어진 일들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내가 봤을 땐 거의 에베레스트 급인 경삿길을 걸으며 나는 나 고산병 온다, 하늘이 빙빙 돈다,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인다, 나는 여기 누워있을 테니 혼자 정상 갔다가 다시 여기로 와라, 등등 온갖 진상을 부려댔고 남편은 이제 거의 다 왔다, 저 모퉁이만 돌면 정상이다, 라는 말을 대략 150번쯤 하며 나를 달래 용케 정상까지 데려갔다.


정상에 올라오니 울긋불긋 단풍 옷을 입은 산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올라오면서 고통받은 기억은 싹 사라졌다. 남편이 잔뜩 챙겨 온 간식을 먹고 따뜻한 물과 커피를 마시고 나니 그제야 남편의 커다란 배낭이 보이고 이거 들고 오느라고 무거웠겠다 싶어 마음이 찡해진다. 내려갈 때는 내 가방에 남은 간식을 넣으라고 했지만 남편은 괜찮다며 씩씩하게 앞장선다. 내려올 땐 숨은 안 차는데 무릎이 아프다. 아픈 무릎에 무리 안 가게 조심조심 옆으로 내려오며 머리로는 하루라도 젊을 때 남편과 좋은 산에 등산을 좀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내 몸이 따라줄지는 미지수! 제가 고산병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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