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찾아 가는 차별화된 과정이 모여서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고민이 있다. 회사에서는 적당히 일 잘하는 사람, 코칭을 통해 타인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겠다는 마음, 정이든이라는 부캐로 작가로서의 꿈도 잃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글쟁이.
세 가지가 겹치는 지점에 어쩌면 다른 이들과 다른 나만의 고유함이 있을지 모른다. 그 생각으로 시간은 흘러간다. 흘러가는 시간 속 단순히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만의 고유함이 드러나고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점점 눈 속에 파묻혀 어느새 보이지 않을 나만의 색깔을 찾아야 할 텐데, 눈밭을 파헤치기는커녕 그냥 눈사람만 예쁘게 만드려고 눈코입을 만들 나뭇가지들을 줍고 있는 것일지도.
누구에게나 고유함은 있다.
나는 코칭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생각을 더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여러 겹 겹쳐져 속 알맹이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들여다보면 멘틀 안의 외핵 안의 내핵처럼 누구나 뜨거운 그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숨겨져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고유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 또한 단지 들춰보면 뜨겁다는 것만으로는 고유한 별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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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실내 클라이밍에 잠시 빠진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빠졌다고 하기에 민망하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사람들과 어울려 간 것이 전부였으니, 잠시 경험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나름 전완근을 키우려고 턱걸이도 열심히 하고 여러 클라이밍장을 전전하면서 클라이밍 코스마다 파훼법을 생각해 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클라이밍을 즐기는 분들은 대부분 20대 젊은 분들이었으나, 간혹 나랑 비슷한 또래 또는 더 나이가 지긋한 분도 보였다. 특히 50대 중반 정도로 되는 남자분이 딱 붙는 나시를 입고 클라이밍장을 오르는 모습이 멋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또래의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느낌. 나아가 '내가 살아 있구나!'를 깨닫게 하는 그 소중한 느낌. 그 느낌이 그분으로 하여금 암벽을 올라가는 동력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나의 고유함이 드러나는 것일까. 이를테면 내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모아놓은 돈으로 세계일주를 다니며 지중해 어딘가에서 서핑을 즐긴다면 그것이 나만의 고유함이 될 수 있을까. 누구는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독창적인 소비나 경험이 나의 본질을 구체화하는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성수동의 힙한 팝업 스토어에서 한정된 시간에 긴 대기를 거쳐 입장해야만 얻게 되는 굿즈를 인스타에 올리는 순간, 누군가는 다른 사람과 다른 나로서 존재함에 엄청난 희열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회적인 것이며 내 기준으로는 나의 존재와 근본적인 연결고리는 없는, 한 때 유행하는 옷차림 같다. 맨몸으로 왔다가 맨몸으로 갈 우리의 인생에서 큰 사막의 열기를 식히고자 부채질하는 것과 같이 허망한 무언가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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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 보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어 '이 기둥이 무엇인고' 하는 것처럼 고유함이라는 코끼리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어차피 나는 성장했다가 다시 늙어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기 마련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뀌는 내가 고유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다.
정답인지 모를 것들에 도전하는 과정 자체들이 모여 인생의 고유함을 구성한다. 코끼리를 만지지 않고 남들이 하는 얘기에 휘둘리며 저기 코끼리가 있네 하고 상상만 하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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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이든은 대체 어떤 고유함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긴 시간 내가 해결하지 못한 화두다. 마음속 한편에 숙제처럼 치워져 있다가 가끔씩 떠올라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는, 미해결 프로젝트다.
얼마 전 '디퍼런트'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화두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더 나은 것을 한 방향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다들 비슷비슷해지고, 이러한 세상에서 브랜딩을 위해서는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케아나 애플처럼 시장을 선도하고 치열한 브랜딩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브랜드만의 고유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내가 추구하려는 목표, 특히 작가로서 고유함을 가질 수 있을까? 나만의 글을 쓰려고 시작한 작가 활동이 적당히 읽히는 글을 좇아 평범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고유함이란 아마도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천천히 다듬다 보면 나만의 관이 생길 것이다. 그러다 보면 팔리는 글들도 쓸 수 있으리라. 고유함을 잃지 않으려면 그 시도들이 뻔하지 않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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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함이라는 것은 나라는 사람의 속성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러닝과 헬스와 클라이밍, 요가까지 이런저런 운동에 조금씩 발을 담그고, 인사담당자로서 열심히 잘해서 회사에서 성공하면 될 것을 그것으로는 만족 못할 것을 알고 코칭이니 글쓰기니 하는 것들을 계속 기웃거리고 있다.
자기 계발서를 주로 읽으면서도 소설과 에세이를 놓지 못하고, 쓰는 글들도 무난한 감성 에세이나 뭉클하게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소설도 써보고 시도 써보고 하는 것이다.
즉흥적이고 변칙적인 것, 뻔해 보이는데 뻔하지 않은 것들이 모여 나를 이룬다. 나를 한 마디로 정의하고 그것이 나의 고유함이요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나름의 과정에서 코끼리 다리도 만지고 코도 만지고 그러다 올라타 보기도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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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를 보면 '고유'라는 단어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특수한 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판타지에서 쓰면 그냥 더 세다는 의미가 붙은 접두어가 된다고 한다. 나는 센 사람을 지향하지는 않으니 꼭 고유하지는 않아도 되겠지.
몰랐던 사실인데 '유' 자가 '오직 유'가 아니라 '있을 유'라고 하여, 그저 존재하는 것이므로 여럿이 있을 수도 있단다. 그러고 보니, 고유하기 위해 외계인처럼 너무 지구인과 다른 나를 찾는 것도 바람직한 접근은 아니겠다. 뻔뻔하고 비슷하게 무리에 섞여 존재하면서, 동시에 남들과 다른 차별화되는 것들을 하나씩 장착해 나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유를 지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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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정이든의 글을 찾아주시는 고유한 독자님들, 정든님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차별감 있게 이 글을 끝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고민해봐도 정답은 잘 모르겠다. 그저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수밖에. 오늘은 고유한 습작시 하나 남기며 마무리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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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오후]
책상에 앉아 1년을 돌이켜 본다 햇살을 이불 삼아 둘둘 말고 잔디 위를 동동 떠다니는 바삭하고 정든 오후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아쉬움 때문인지 멀뚱 거리며 방전된 배터리처럼 깜빡거리고 있는 것이다
정수리에 새싹이라도 돋으려는 것인지 광합성을 해야 충전을 할 수 있으련만 느지막이 데워먹은 햄볶음밥으로 인한 고소함이 차올라 잠깐 졸린 눈을 붙였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발로 차다가 낙엽 부스러기가 설탕으로 바뀌는 위화감 없는 기적과 감은 기적 속에서 다시금 식욕이 일었다
달콤한 꽈배기를 먹고 싶다 낙엽맛 꽈배기, 꽈배기맛 낙엽인가 씁쓸할 것 같은 낙엽맛에 번쩍 든 고개
의도치 않은 졸음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씩 웃어 버렸다 주말의 어느 정든 오후 슬리퍼를 신고 나가 커피를 사 마실까 하다가 그냥 침대에 누워 본격적으로 낮잠을 자기로 했다 매 순간, 곳곳의, 각자에게, 나름의 충전 방식이 있나 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