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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Jun 11. 2020

아직 죽지 않아 다행입니다.

글 쓰는 딸과 시 쓰는 아빠 - 3. 사랑

텍사스의 건조한 공기와 뜨거운 햇빛에 아침을 맞이하면 드라이기의 전깃줄을 지그시 바라보고,
천장에서 뻣뻣하게 굳어 있는 환풍 팬의 큰 날개를 바라본다.
시선은 벽에 있는 환풍 팬 스위치로 옮겨간다.
그리고는 팬을 돌린 다음에 전깃줄을 걸고 목을 거는 게 나을지, 목을 걸고 팬을 돌리는 것이 나을지를 고민했다.



3년 전의 나의 아침 일상이었다.



그보다 3년 전부터, 아마 서른 즈음, 계속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이 계속 반복되자 회사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를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녔다. 집에 들어가는 것이 괴로워서 숨을 쉬기 위해 회사에 갔었다. ‘직업이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라고 매일 최면을 걸었지만 행복해지지 않았다. 처음 상담 선생님을 만났을 때, 나의 상황을 또박또박 잘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한 시간 내내 울기만 하다가 다음 약속을 잡고 상담센터 문을 나섰다. 혹시 회사의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싶어 눈물이 마를 때까지 화장실에 들어가 꺽꺽 대면서 울음을 참았다. 다행히 일이 많아서 밤늦게까지 야근을 한다고 나의 상황을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때의 나는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한 채로 사지가 묶여있는 느낌이었다. 힘들어도 얼굴에는 웃음을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한다는 자체가 매우 힘들었다. 신발정리를 하기 전에 청소기를 돌린다거나 헝겊 행주를 삶아 쓰지 않고 일회용 행주를 쓴다거나 사용한 드라이기의 코드를 뽑지 않았다거나 하는 내 인생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 때문에 나는 밤새도록 전남편에게 혼이 났다. 매를 맞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상황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잠도 자지 못하고 새벽까지 혼나다가 피곤하게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세상에서 나 따위는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별 것도 아닌 것으로 한두 시간 정도 계속해서 혼이 나다 보면 머리가 멍해지고, 손과 발에 감각이 없어지다가 눈이 보이지 않고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점점 커져서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상담 선생님은 이런 느낌이 ‘해리’라고 알려주었다.


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생님과 1주일에 한 번씩 꾸준한 상담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근본을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우리는 시부모님의 경제적 어려움과 전남편의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불행한 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남자가 행복해지면 내 삶도 자연적으로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평생 갚지 못할 부모님의 빚을 갚으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에 다른 탈출구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몇 번의 깊은 상의 끝에 그 남자는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했다.


전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준비를 하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서포트하기로 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차려 놓고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와 저녁밥을 하고 회사로 돌아가 야근을 하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는 하루하루를 반복하면서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그 남자는 시험성적이 잘 나오지 않거나 식사와 가사가 부족할 때마다 혼을 냈지만,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서 이 위기를 극복하면 삶이 나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몸과 마음이 바스락거리면서 부서질 것 같으면 회사에 가서 유부녀 선배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선배들은 빈 회의실에서 저녁시간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눈물을 흘려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그 남자를 따뜻한 텍사스로 유학을 보내고 나는 남아서 마음을 다스릴 기회를 얻었다. 그 당시 나는 여동생과 함께 살면서 월급 250만 원을 받았는데, 그중에 200만 원은 미국에 생활비로 보내고 보험금과 공과금을 제외하면 20만 원 남짓한 돈으로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는 동안 다시 내 삶이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몇 달 뒤에 예기 치도 못한 사건이 생겼다. 한참 잘 나가던 회사의 제품에서 배터리가 폭발하는 불량 문제가 발생했다. 회사는 제품 전량을 리콜하기로 결정했고, 사원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늘 받아오던 보너스를 올해는 받지 못할 것이고 구조조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나는 이 소문을 미국에 있던 전 남편에게 전했다. 아마도 그에게 회사가 힘들어서 고생한다는 위로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그는 자신의 학비는 어쩔 거냐며 당장 계획을 세워서 보고하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눈물이 흘렀다.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죽음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몇 주 뒤 갑작스럽게 배가 너무 아팠다. 회사 선배가 아픈 나를 데리고 응급실을 가 주었다. 살아가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염증 수치가 높아서 내장이 파열되었고, 파열된 내장에서 나온 피가 복강에 가득 차서 횡격막을 누르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렇게 피가 나올 때까지 무엇을 한다고 병원에 늦게 왔냐고 했다. 1주일 정도를 입원했고 병가를 냈다. 정말 선배들이 나를 챙겨주지 않았으면 그날 저녁에 자다가 죽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입원을 하는 동안 나는 다시 한번 나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휴직을 하고 미국으로 가서 그 남자와 정면 승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나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작정이었다. 죽음을 고려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이 가족이었다.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부모님이 텅 빈 몸을 보면서 우는 모습만큼은 상상하기 싫었다.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라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병가를 끝내고 나는 회사에 자기 계발 휴직 1년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1년은 쉬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회사의 선배들과 친구들을 만나서 쉬고 오겠다고 인사를 해 나갔다. 내가 아끼던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 모니터와 모니터 받침대는 주변의 친한 선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선배들이 ‘미국 가면 좋은 회사로 이직해서 안 돌아오려는 거 아니야?’라고 장난을 치면 겉으로는 웃으면서 아니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의미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를 완전히 그만두지 않았던 것은 혹시라도 내가 죽으면 내 퇴직금 이외의 보상금이 조금 더 나와서 우리 부모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손한 생각 때문이었다.


6개월 뒤 나는 인천공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 최악의 허리케인 중 하나인 하비를 뚫고 우리 오빠가 텍사스로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경찰을 부르고 나 대신 뒷정리를 해주겠다는 오빠를 두고 나는 혼자 20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옮겨 타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빠는 나와 전남편의 목숨을 살렸고, 전남편이 무사히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겉으로는 거칠게 ‘금마는 자살할 용기도 없으니 니나 잘 돌아가라’고 했다. 입국 게이트를 지나서 엄마와 동생들이 보였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다. 아빠가 수술하실 때에도 베란다에 숨어 숨죽여 우시던 어머니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다. 죽지 않고 돌아와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혼은 나에거 썩은 심장의 조각을 도려내는 것이었다.






비켜 간 소풍

          - 이영배


친구 딸 결혼식 가려고 거울 앞에 앉았다


서울 가서 붉은색 체크 넥타이 매고 입사 선서할 때, 옆자리 여직원 괜스레 웃어줄 때, 대리 승진할 때 키 작고 아담한 여자와 중매로 장가갈 때, 그 여자와 첫아들 낳을 때, 마감 날 밤새워 가짜 계약서 만들 때, 윗사람한테 치받고 사표 던질 때, 첫 국장 발령받고 만리장성 여행 갈 때, 새천년 열린다고 세상 사람 흥분할 때, 명퇴당하고 속으로 눈물 흘릴 때

-오늘 당신이 장가가나?

바가지 깨지는 마누라 소리 한마디

정신이 번쩍

뒤죽박죽 세월이 왔다 갔고

거울에는 헛웃음만 가득하다


뷔페 먹고 씁쓸한 소주 한 잔

흘러간 옛이야기


여보게들,

그런 소풍 별난 곳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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