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은 Jul 20. 2020

원래 그런 거예요

처음 하는 일이 어렵다면

며칠 전에는 코드를 다 날려먹고 성질이 잔뜩 났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평소보다 얼굴이 상기되어서 표정이 굳어 있는 나에게 대장이 말했다.


"원래 다 그런 거예요. 하다 보면 늘어요."

옆에서 앉은 데이먼 님도 거들었다.

 "내일 다시 해요, 머리 식히고 나면 금방 될걸요? 오랜만에 하는 사람이 이 정도면 훌륭하죠."

"저는 보통 다음날 했던 거 다시 하면 시간이 반도 안 걸리더라고요. 지금 노력에 한 20프로 정도면 충분할걸요?"



순간적으로 '나도 못난 나를 견디는 것이 참 보통일이 아닌데, 우리 팀은 타인의 못남을 견뎌주는구나. 참 좋다.'라고 생각했다.






20대에 어렵고 힘든 것들이 3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는 상당히 편안해졌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난 어른과 대화하기 라던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인정하는 일 등이 있다. 어릴 때는 이런 것들이 참 힘들었는데, 지금은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해내게 된다.


그것과는 반대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더 불편해진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 최근에 새롭게 시작한 대부분의 일들이 본 적 없는 색다른 것들이 아니었다. 어깨 너머로 한 번쯤 보았던 것이나 예전에 발가락 정도 잠깐 담궈 본 업무인 경우가 많다.


프로그램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서 특허 업무만 7년 정도 하다가 최근에서야 다시 시작했다. 배운 기간보다 하지 않은 기간이 더 길다. 하지만 회사에서 제품에 대해 특허 출원 업무를 하다 보니 코딩은 손에 익지 않아도 보는 눈은 상당히 높아졌다. 서당 개도 3년이면 붓은 못 들어도 풍월은 읊는 다는데, 나도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서당개와 같이 머릿속에서는 풍월을 읊고 있다.


마음은 이미 배테랑 개발자인데, 현실은 아주 쉬운 것 초자 구글링 하는 초보 구글러다. 그래서 그동안 항상 다시 개발자가 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형편없는 실력으로 많이 상해버렸다. 상한 마음을 달래가면서 한 달 정도 지난 지금은 지난달보다 많이 성장했다고 자부하지만 그마저도 갈길이 멀다. 이런 상태에서는 나의 못남을 견뎌내기엔 상당히 에너지가 소모된다.


물론, 며칠 전처럼 주변에 나의 못남을 있는 그대로 견뎌주는 사람이 있다면 참 좋지만 그런 사람이 없다면 내가 나의 못남을 견뎌주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속이 답답해지면, 그동안 팀원들이 해주던 "원래 그런 거예요."라는 버티는 말을 나에게 스스로 해주려고 한다.








나의 못남을 견디기 힘든 이유 중에 하나는 실패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스타트업 결과의 default가 실패인 것처럼 무슨 일이든 실패가 더 확률이 높다. 그것을 알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말을 한다. 사랑과 미움은 그 뿌리가 관심으로 같기 때문일 것이다. 무관심은 사랑이나 미움을 완전히 태어나지도 못하게 한다.



실패는 사실 성공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뿌리는 '시도'이다. 시도의 결과는 성공일 수도 있고 실패 일 수도 있다. 계속된 시도는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데 그중에 실패가 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러나 그 실패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 반복 될수록 '연습'이라는 이름으로 변하고, 또는 '경험'으로 변한다. 실패인 채로 남아 있는 경우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을 때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포기는 가끔 성공을 하는데, 그것이 '정신승리'를 가져온다.



오늘도 시도하는 못난 나를 견디는 나에게,

미래를 위해 오늘도 실패할 것 같은 일을 하는 나에게,

스스로 위로를 건넨다.


"원래 그런 거야. 잘하고 있어!"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 차려! 그건 자라가 아니라 솥뚜껑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