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은 Jul 13. 2020

정신 차려! 그건 자라가 아니라 솥뚜껑이야

자라도 사실은 놀랄 필욘 없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한다.

실패는 늘 그렇듯이 세상의 모든 뚜껑을 자라로 둔갑시킨다. 나의 경우에는 솥뚜껑, 냄비 뚜껑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이 자라가 되어버렸다.




기분이 언짢아진 그 사람이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한 시간쯤 지나자 침묵하던 혓바닥이 나를 향해 칼날을 들이민다. 그렇게 내 마음을 서걱서걱 베어버렸다. 점점 나는 침묵이 무서워졌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다른 사람과 나 사이의 침묵이 날카로운 칼로 갑자기 돌변할 것 같아서 무서웠다. 나에게 계속 안전하다는 신호를 주지 않는다면 숨이 막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침묵은 나에게 자라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보고 놀란 자라는 날카로운 말들이지 침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들은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있어 절대 분리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침묵과 함께하는 평화로움, 사랑스러움, 흐뭇함, 여유가 있다. 침묵과 함께하는 화, 분노, 짜증, 무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자라가 아닌 자라의 등판과 같은 넓적한 무엇이다. 놀랄 필요가 없는 그냥 넓적한 무엇이다.


타인과의 침묵 사이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두려움이 있다면 나에게 단호하게 이야기 해주자.

"정신 차려! 저건 자라가 아니라 솥뚜껑이야."


자라 보고도 놀라지 않는 날이 오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비키니 입기와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