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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Jul 27. 2020

흐리고 맑은 날

우울증은 미세먼지와 같았다

요즘은 비가 참 많이 온다. 어느 날은 하늘이 뚫린 듯이 비가 왔다. 이런 장마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보정이라도 한 듯 새파랗다. 비가 펑펑 쏟아지는 찌푸린 회색 하늘도, 겨울 이불속에서 꺼낸듯한 무거운 구름을 품은 하얀 하늘도,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신 파란 하늘도 저마다의 운치가 있어 기분이 상쾌해진다.


오늘 출근길에 양화대교를 건너면서 저 멀리 남산타워를 보았다. 하늘은 잔뜩 흐려 나지막이 시꺼먼 구름들이 널려있는데, 다닥다닥 붙은 건물과 분주한 서울의 움직임이 참 선명하다. 하늘은 흐린데 맑은 날이라고 해야 하나... 최근에는 미세먼지가 줄어들어 흐리고 맑은 모순적인 날이 많다.


여태껏 나는 미세먼지로 흐려진 하늘과 구름만으로 흐린 하늘을 구별하지 못했었다. 으레 흐리면 먼지가 많다고 두 가지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두고 있었다. 코로나로 세상이 많이 변하고, 맑은 하늘이 자주 모습을 보이는 지금에서야 그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구름이 많은 하늘도 깨끗한 하늘 일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흐리고도 맑은 하늘과 함께하는 산책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닐 무렵, 의사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은 우울증의 '증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면, 감기처럼 기침이 나고 콧물이 나는 증상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전까지 내가 힘든 것은 나의 정신이 나약해서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그때 선생님과의 대화를 조금 옮겨 보겠다.


"감기가 걸리면 갑자기 기침이 날 수 있어요. 갑자기 기침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떻게 생각할 게 있나요? 그냥 감기 걸렸구나 생각하죠."

"그럼 콧물이 나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요?"

"코감기 걸렸구나 생각하죠. 그거 말고 다른 생각이 있나요?"

"코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기침을 하다니 정말 위험한 병에 걸렸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감기 걸리면 기침을 할 수도 있고, 콧물이 날 수도 있는데 기침 한 번에 불치병에 걸린 사람처럼 생각한다거나 코 좀 푼다고 코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누가 생각하겠어요."

"그게 바로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이유예요. 우울증이 찾아오면 그 증상이 무기력해지고, 감정의 기복이 생길 수 있는 거죠. 그런 사람을 보고 무기력한 것은 절대 못나을 것이고, 감정 기복을 보아하니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죠."


우울증이라는 것도 병이기 때문에 '증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코감기에 걸려서 코를 푼다고 해서 코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듯이, 우울증에 걸려서 의기소침에 있다고 해서 의미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심지어 우울증도 감기처럼 어떤 사람은 생각보다 자주 걸린다. 몇 년 동안 감기 한번 안 걸리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환절기엔 감기를 꼭 걸리는 사람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하늘과 참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은 맑고, 어느 날은 흐리고, 별이 반짝이다가 귀퉁이가 붉게 달아오르면서 해가 뜨기도 한다. 하늘색이라는 것은 검은색이고 흰색이며, 푸른색이며 붉은색이다. 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찼다가 싫증을 냈다가, 희망을 가지다가 부끄러워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려 뿌연 날이 계속되다 보면, 마치 '푸른 하늘만 진짜 하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름 낀 하늘은 미세먼지가 가득 찬 뿌연 하늘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우울증이 마음속에서 그 세력을 확대하면 후회, 싫증, 질투 등과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들이 내 안의 어두운 우울증과 동일시된다. 그래서 그런 감정을 느낀 은 자신을 탓하면서 더욱더 괴롭히게 된다.


몇 년 동안 하늘은 미세먼지로 가득했지만 그 답답하고 누런 것이 하늘은 아니다. 그냥 미세먼지인 것이다. 몇 년 동안 우울증이 나를 괴롭혀왔지만 그 무기력하고 어두운 것이 나는 아니다. 그냥 증상인 것이다. 그러니 우울증의 증상을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그때의 선생님들과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을 나도 우울증과 싸우는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먼지로 뒤덮일 수도 있는 내 마음을 위해 남겨 놓는다.

"우울한 그 모습은 당신이 아닙니다. 우울증은 미세먼지처럼 내 마음을 덮어 맑은 날이건 흐린 날이건 다 숨 막히게 합니다. 그러나 많은 비가 내리고 먼지가 씻겨 나가면 당신의 색깔은 다시 나타날 거예요. 흐린 날도 먼지가 씻겨나간 후에는 흐리고도 맑은 날이 됩니다. 흐린 날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까맣고, 하얗고, 파랗고, 빨간 하늘 같은 내 마음을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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