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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Aug 03. 2020

섭섭함이 자라나는 과정

내 마음 관찰하기

섭섭하다.(형용사)
3. 기대에 어그러져 마음이 서운하거나 불만스럽다.
<출처: 표준 국어 대사전>




며칠 동안 강한 섭섭함이 생활 속에 자리를 잡아 버렸다.

생각할수록 섭섭하고, 나에게 어쩜 그럴 수 있나 생각하게 된다.

섭섭함은 자꾸만 내 마음속에서 성장해 나갔고 순간순간 욱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섭섭함과 마주해 보기로 했다. 마음속에서 어떻게 자라나는지 관찰해 보기로 한 것이다.






아주 주관적인 섭섭함 성장 루프(feat. 개발자 스타일)


0. 일상기 : 어떠한 섭섭함도 없는 단계

1. 태동기: 티끌 같은 서운함이 생기는 시기

   - 일상기에서 약간의 섭섭함이 발생하는 시기이다.

   -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발생한다.

   - '이런 일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라는 구체적인 생각보다는 '약간 불편해'라는 생각이 든다.

   - 섭섭하다는 느낌을 알아 채기 어렵다.

2. 자책기: 나의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시기

   - 섭섭한 느낌이 하나둘씩 쌓이게 되면 내가 섭섭한 상태임을 자각하게 된다.

   -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섭섭하게 대할까라고 자책하는 시기이다.

3. 표현기: 섭섭함을 드러내는 시기

   - 섭섭함의 크기가 작다면 장난 삼아 슬쩍 섭섭함을 드러낸다.

   - 장난 삼아 슬쩍 들어낸 섭섭함이 통하지 않으면, 진지한 대화를 시도한다.

4. 기대 변환기: 섭섭함이 발생한 대상에 대한 기대를 조정하는 시기

   - 먼 관계라면 기대를 완전히 낮추고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할 수 있는 시기이다.

   - 가까운 관계이거나 애정도가 높은 대상이라면 기대 변환기에서 기대를 낮추기가 어렵다.

5. 미래 예측기: 섭섭함이 쌓일 미래를 예측하는 시기

   - 기대를 변경하기 어려운 대상일 경우에 그 대상과 함께할 미래를 예측하게 된다.

   - '벌써 이렇게 섭섭하게 하면, 나중에는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라면서 걱정을 사서 한다.

   - 매우 운이 좋다면 '이제 곧 안 그러겠지' 또는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지.'라고 긍정적인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고 부정적인 미래를 주로 예측한다.

6. 관계 수축기: 섭섭함이 발생한 대상을 물리적/정신적으로 멀리하는 시기

   - 기대 변환기에서 기대를 전혀 하지 않는 상대에게 자주 나타난다.

   - 섭섭함이 쌓일 미래를 예측했을 때,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대안이 나오지 않을 때에도 발생한다.

   - 사람에 따라서 적정거리를 유지하고 가까워지지 않도록 주의하거나 완전히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섭섭함도 마음의 소모가 심하지만 섭섭함의 성장과정을 FULL로 견뎌내기에는 여간 마음의 힘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 속에서 미움, 실망, 화, 포기, 후회 등도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다 보면 섭섭함이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미흡하지만, 내가 섭섭함에 에너지를 덜 빼앗기기 위하여 3가지 행동 원칙을 세워보았다.



섭섭함으로 생기는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위한 3가지 생각.. 아직은 연습 중



1. (빨강) 어차피 멀어질 관계라면 자책하기 전에 멀어지자.

  - 예시 대상: 비즈니스 관계에서 중요 파트너가 아닌 경우

  - 예상 시나리오: 새로운 기획을 함께 할 파트너사를 알아보던 중 3개의 후보사 중 하나와 미팅을 진행했다. 강압적인 말투로 업무 이야기를 진행하던 그분은 '이런 부분은 잘 모르셔서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라면서 은근히 비꼬면서 말을 한다. 중요한 비즈니스 관계를 맺기 전이고, 비즈니스가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으니 자책을 하기 전에 관계 수축을 준비하도록 하겠다. 괜히 내가 만만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나 자책하다 보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지고, 더 좋은 사람들에게 줄 에너지마저 빼앗기게 된다. 물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짐작이 가는 경우는 제외한다.


2. (초록) 나의 기대는 애정으로 인한 것이므로, 표현 시에 상대에 대한 애정도 언급해 주자.

  - 예시 대상: 남자 친구

  - 예상 시나리오: 남자 친구가 요즘 나에게 짜증을 많이 낸다. 내가 잘못한 것인가 생각해보기도 하고 나에게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지만, 특별한 점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섭섭함을 표현하기로 했다. 우선 왜 섭섭한 것인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동안 남자 친구는 나에게 힘든 일이 있어도 조곤조곤 상황을 잘 이야기해주는 사람이었는데, 최근에는 자꾸 짜증을 내서 내가 하찮게 느껴지고 섭섭했다. 나는 남자 친구가 힘든 상황이 있어도 짜증을 내기보다 나를 존중하며 대화를 해주는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의 행동은 나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르다. '나는 자기가 힘든 상황도 차근히 설명해주던 모습이 참 좋았어. 그런데 요즘은 내 기분을 생각해주지 않아서 섭섭해'라고 내가 애정을 느낀 부분과 기대를 함께 이야기해준다. 상대에 대한 나의 기대를 줄일 수 없는 이유를 충분히 어필(?)하면 마음이 통할 수 있다. 그러면 미래까지 예측하면서 화의 자가발전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3. (파랑) 기대를 변환할 때는 충분한 대화를 통하여 납득할 수 있게 변경하자.

  - 예시 대상: 부모님

  - 예상 시나리오: 끈끈한 관계일수록 쌍방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경우가 많다. 부모님이 나에게 기대를 하듯이 자녀도 부모님께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가끔 부모님께서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아서 섭섭할 때가 있다. 부모님이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실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대화를 통해 기대를 조금씩 조절할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이혼을 비밀로 해서 무난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생각에 반대를 했었다. 그런 기대를 좀 낮추고 나의  본모습을 이해해달라는 것이었다. 반대로 다시는 결혼 이야기 꺼내지 말라는 말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 부분은 부모님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긴 하지만 기대치를 서로 대화로 풀어놓으니 상당 부분 섭섭함이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살아가면서 섭섭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더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여 일상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삶의 과정마다 조금씩 달라질 텐데, 그때마다 더 찾아보고 실천하도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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