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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Aug 12. 2020

너와 이별하면 다시는 사랑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랑은 생각만큼 절망적이지 않았다.

사랑의 시작과 끝은 비슷한 느낌이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랑의 한가운데와는 정 다른 느낌이다.
이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보면 어땠을까 하는 느낌 말이다.




나의 인생에서는 몇 번의 사랑이 없었지만 헤어질 때는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 지난 사랑이 너무도 훌륭해서 그만한 사랑을 찾지 못할까 봐 겁이 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못난 나에게도 새로운 짝이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서 지나간 시간 때문인지 헤어진 이후의 내가 사랑할 때의 나와 비교해 초라해 보인다. 눈빛은 덜 반짝이고 볼은 생기가 덜하고 입술은 퍼석해진 것 같았다. 더 열심히 화장해보지만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못난이인 그대로였다. 나에게 주었던 따뜻한 손길이나 눈길을 이제 거두어버린 그였지만 그래도 그가 아니면 무채색으로 물들어버린 나를 상대해줄 사람이 세상에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직 어리던 20대 초반에 겪은 이별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30대 중반이 되어 겪은 이혼은 마음뿐만 아니라 나의 세상마저 다 찢어놓았다. 너무나도 슬프게도 찢긴 세상을 핑계로 나를 돌보지 않게 되었다.


사랑의 끝무렵에는 자존감이 바닥을 드러낸다. 그 사람과의 사랑이 끝난 것뿐인데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조차 퍼석하게 말라버린다.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닫듯이 나에게도 마음을 닫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내가 나에게 참으로 잔인한 사람이 되어 꽁꽁 싸맨 나의 마음에 단 한 방울의 단비도 허용하지 않는다.


완벽히 사랑이 끝내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나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그동안 메말라서 다 터버린 마음을 열어 보살펴 주는 것이다. 너무 말라버린 마음엔 여기저기서 잡아온 위로의 물줄기를 놓아주고 내 눈물로 마음속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건조된 아픔을 씻어낸다.






        




한동안 마음속의 아픔을 씻어내다 보면, 나에게 왜 조금 더 관대하지 않았는지 후회를 하게 된다. 그 사람과 이별하고 다시는 사랑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드는 느낌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려고 노력하니 사랑이 생각보다 절망적이지 않음도 알게 되었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나는 어쩌면 퍼즐의 한 조각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퍼즐 조각은 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 다르다. 어린이용 퍼즐은 보기만 해도 맞는 조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만 어른용 퍼즐에서는 그런 조각이 거의 없다. 실제로 맞춰봐야 아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어떻게 생긴 조각 인지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굴곡을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으레 결혼하면 다 똑같고 무조건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결혼 선배들의 말을 들으면서 살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저 타인의 삶에 꼭 맞는 퍼즐 조각이 되려고 상처로 나의 오목한 부분을 채우거나 볼록한 부분을 떼어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타인의 눈에 잘 맞아 보이는 조각이 되는 것이다.


지독한 이별을 겪고 돌아보니 자신의 굴곡을 잘 아는 이들이 건강한 만남을 계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를 더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성숙한 내면으로 주변의 퍼즐 조각을 보면서 이리저리 나를 끼워 맞추기 위해 낡고 헤지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이별이 그토록 절망적이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다. 나에 대해 고민하고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별 동안 나는 나의 못난 부분들이 참으로 참기 어려웠다. 나의 단점만이 나의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결정은 모두 잘못된 결정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하나의 특징이고 사건이므로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별한 친구에게 '그는 너의 인연이 아니고 모든 것이 너의 잘못인 것은 아니야'라고 위로해주듯 나에게도 말해주자. 이별이 절망적이지 않은 것처럼 나의 삶도 더 이상 절망적이지 않다. 이제는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여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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