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못 먹는 음식도 없고, 그렇다고 밥을 잘 안 먹는 스타일도 아닌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질문을 들었으니 대답은 해야 하는데 "응, 먹을 만해"라고 대답하는 것은 아무래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특히 맛있는 음식일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고작 먹을만한 음식인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거치면 결국은 내 스타일대로 "응! 정말 맛있어."라고 하게 된다.
내 대답을 듣고 나면 또 씩 웃는다. "다행이네."라고 대답하면서.
어느 날은 그 사람이 신경 써서 고른 음식점에 갔다. 교외에 있는 고급스러운 정원을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 겸 카페였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그냥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그 레스토랑은 그런 느낌에 잘 어울리게 너무 비싸지 않은 음식을 파는 예쁜 레스토랑이었다. 하얗고 천장이 높은 실내를 가지고 있어 전반적으로 모던한 느낌이지만 의자와 식탁, 장식장이 나무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짙은 코코아색이어서 고풍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전면 창들이 많아 전반적으로 밝은 느낌이었고 천장에는 금색의 샹들리에가 달려있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얀 실내와는 다르게 적당한 크기의 잔디 정원에는 원색 조형물과 투명한 조형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더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 처음 왔는데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다는 것은 시크한 미국의 도시 여자들의 "Not bad."같은 말일까? 그때는 꽃샘추위가 한참인 봄이었는데, 시크한 말투가 봄의 찬 공기와 같은 톤이었다.
그런데 이 특이한 사람은 텍스트와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신나는 표정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보면 눈치챌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좀 신이나 보였다. 사람의 표정이라는 것을 읽는 것은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표현량이 적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비슷한 표정 안에 희로애락이 다 표시된다. 그것은 사회생활 속에서 습득한 마음을 숨기는 것과는 다르다. 이런 사람들은 순수하게 본인의 감정을 아주 옅은 색으로 띄우는 사람들이다.
예전에 연애를 시작하기 전이 떠 올랐다. 내가 아직 그의 표정을 잘 읽지 못할 때였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온몸을 슬픔에 푹 빠뜨리고 살았다. 나의 경우에는 항상 밝은 '척'을 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감정에 긍정과 부정을 명확히 구별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기쁨, 감사, 성취, 열정, 도전, 축하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은 각기 다른 표정으로 얼굴을 통해 드러날 수 있었다. 반면에,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내가 꼬리표를 달아버린 슬픔, 미움, 질투, 불안, 공포, 짜증, 화, 부당함, 서운함 등은 서로 분화되지 않은 채에 덩어리째로 가음 속 깊은 곳에서 한 번씩 나를 숨 막히게 하고 있었다. 그 감정들은 서로 뒤엉켜 '우울'이라는 느낌으로 퉁쳐졌고, 그 느낌을 가리기 위하여 나는 더 많이 웃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이었다.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산책을 할 때에도 나는 최선을 다해 '활짝'웃으려고 노력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을 꼭 지켜내겠다는 마음가짐이랄까. 그렇게 조금만 맛있어도 "정말 맛있다."라고 말하고, 조금만 예뻐도 "정말 예쁘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마음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음, 먹을만하다." 라거나, "나름 괜찮네."라고 말하기 일 수였다. 말이라도 해서 기분을 조금 올려보려고 했던 나는 그의 태도에 왜인지 모를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내 기준에는 상당히 예쁜 풍경을 보고 "괜찮네."라고 말하는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넌 왜 좋은 것을 보고 좋다고안 해?"라고 말이다.
그 사람은 말했다.
"나쁘지 않고 적당한 게 더 좋지 않나? 너무 좋으면 불편하잖아."
자신은 적당히 어울리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이다. 눈에 띄게 예쁜 것보다는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느낌이 더 좋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의 '나쁘지 않다.'가 어울림이 있어 마음이 편하고 좋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가 약간 나의 기분을 처지게 하는 것 같아 기운이 빠졌었는데 다시금 안정이 되었다. 뭐랄까. 무엇이든 이 정도가 딱 좋다면 세상 참 즐겁게 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그리고, 나 같은 적당한 사람이 이 사람 눈에는 좋아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동네 어른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과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수수하고, 멋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친구가 진국 이데이."
그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온 적이 없었지만, 오늘따라 배시시 웃으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저 사람은 그런대로 예쁜것을 좋아한다. 그냥 수수한 맛에서 느낌을 찾는가 보다. 그런 작은 것에도 '좋음'을 느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