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비밀로 해
성공만 이야기하는 방법이 있나요?
주말에 6개월 만에 대구에 있는 집에 갔다. 코로나 때문에 설날 이후로 집에 간 적이 없어서 부모님을 오랜만에 뵀다. 다행히 두 분 모두 건강해 보이셨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도 부쩍 자라 있어서 나를 보고 낯을 가리는 모습이 참 어색하면서 귀여웠다. 퇴사한 이야기와 법인을 설립한 이야기 같은 근황을 한참 이야기하는 도중에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전화 온 친척 언니였다.
(친척 언니는 아빠의 이종 사촌 동생으로 엄마는 아가씨라고 부르고 나는 아지매라고 부르지만 나랑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 편의상 친척 언니라고 쓰도록 하겠다.)
그 언니는 2년 전 미국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3년 전 내가 미국에 갈 때 그 언니에게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언니는 이제 이민후 자리를 잡고 내 생각이 나서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 언니는 나를 안 본 지 오래되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다고 엄마에게 물어봤다. 최근 3년 동안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한마디로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하기엔 너무 정신없는 생활이었다. 나는 미국으로 생을 마감하려 떠났다가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마음을 고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혼을 하고 이별의 슬픔에 우울증 치료를 하고 연애를 시작했으면서 회사를 복직했다가 부서를 이동했다가 퇴사 후에 창업을 한 상태였다. 다시 봐도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인생사이다.
그런데 엄마는 친척 언니에게,
"정은이는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서 좋은 기회가 있어서 들어왔고, 지금은 회사에서 투자받아서 창업했어."라고, 아주 성공담만 추려서 한마디로 정리해 버리셨다.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닌데 구태의연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피곤하셨나 보다. 나는 어머니의 요약 실력에 감탄하면서 조카와 이불속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아, 잠깐만! 정은이 바꿔줄게."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정말 생각 없이 신나는 휴일을 보내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즐거움이 싹 달아나버렸다. 엄마는 나에게 휴대폰을 넘기면서 "이혼은 비밀로 해."라고 말씀하셨다. 알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첫 문장부터 대답하기 어려운 말이 나왔다.
"미국 올 때 결혼하고 남편분이랑 왔었지? 우리가 안 보긴 오래 안 봤나 보다. 결혼 축하해."
지금 이혼한 지 2년이 지났는데 결혼을 축하받아야 마땅한 것이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옆에서 시종일관 "비밀로 해!"라고 눈에서 레이저를 쏘고 계셨다. 나는 축하받을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상황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언니는 친구 중에 스타트업으로 상당히 성공한 분이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나를 바꿔달라고 했단다. 참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뒤틀린 내 기분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는 조카와 숨바꼭질하던 이불에 꼭꼭 숨어버렸다. 갑자기 속이 답답하고 울렁거렸다. 엄마에게는 생리통이 심하다고 둘러대었고, 엄마는 조카를 데리고 나가면서 배 위에 올려두는 작은 전기장판을 꺼내 주고 가셨다. 한 숨을 자고 나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엄마한테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가 괜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이혼 한 뒤로 2년이나 지난 지금도 나는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다니고 있다. 대구를 다녀온 며칠 뒤 병원을 갔는데, 여느 때처럼 의사 선생님께서 잘 지냈냐고 물어보셨다. 최근에는 거의 약을 끊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상담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그 날은 선생님께 하소연을 좀 길게 했다. 대구에 갔다가 엄마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엄마가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속이 상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께서는 '기분이 많이 나쁘셨나요? 참을 만하셨나요?'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참을만했는데, 자꾸 생각이 난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의 의견은 이러했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래도 60대 이상인 분들에게는 지금 상황이 이야기 하기 애매할 수 있어요. 엄마는 딸이 이혼을 하건 말건 중요하지 않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계속 그 이야기를 물어 보면 대답해 주기 힘들지 않겠어요? 딸은 옆에 있지 않으니 그 이야기를 한 번만 듣고 말겠지만 엄마는 계속 들을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을 때에도 친척을 만나면 계속 이혼을 비밀로 해야할지 걱정된다고 이야기했죠? 그건 어머니께 이야기 한번 해보세요. 어머니께서 사위 될 사람한테 직접 거북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양해를 구해주면 좋겠다고요."
평소에는 선생님께서 내 이야기를 주로 들어주시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의견을 주셨다. 병원에서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환자들을 만나는데, 이런 일들은 자주 있는 흔한 일이라고 말씀도 하셨다. 내 기분이 크게 나쁘지 않다면, 엄마가 나의 실패들을 비밀로 하는데 협조를 하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생기는 난처한 상황은 어머니께서 직접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려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정말 기분이 안 좋다면 어머니께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편이 좋겠다고 하셨다.
생각해볼수록 참신한 방법이다. 이혼을 한 것은 내 사정이지 엄마 사정이 아니다. 엄마의 인간관계에 나를 끌어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 반면에 딸의 이혼을 숨기는 것은 엄마 사정이지 내 사정이 아니다. 엄마는 엄마의 사정이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내가 불편한 점이 있다면 그것만 엄마가 해결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다음날 엄마와 통화를 했다. 병원에서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나는 엄마가 나를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해서 기분이 나빴는데,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단순히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러셨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여쭤보았다.
엄마는 그날 나의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것을 보고 실수했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부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고 사과하셨다. 엄마랑 이야기해보길 잘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마음속에 응어리가 계속 남아있었을 것이다.
내친김에 우리는 몇 달 뒤에 있을 동생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 물어보면 이혼했다고 솔직하게 말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최대한 편하게 있고 싶으니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께는 먼저 인사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전적으로 동의하셨다. 그때가 되어봐야겠지만 우리의 작전이 실패해서 약간의 부상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녀가 서로의 마음을 알았으니 큰 틀에서는 이미 성공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