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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Sep 22. 2020

가만히 옆에 있어준다는 것

생각보다 끈기가 필요한...

몇 주 전부터 친한 친구의 상태가 안 좋다. 같은 집에 살진 않지만 주에 2~3일은 보기 때문에 표시가 난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는 것을 보아선 분명 집안일이다. 그 친구는 내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봐도 며칠 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친구는 어떤 일이 있어 힘든지 말해 주었다. 예상대로 집안일이었지만 제삼자가 듣기에도 참 힘들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옆에서 지켜봐 주고 싶었는데, 그것이 참 어려웠다. 최대한 배려하면서 있고 싶지만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으로 기어 나온다. 나는 예전부터 하고 싶은 말을 잘 못 참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대학교 2학년이 끝나는 겨울방학에 글로벌 챌린지를 통해 미국을 다녀온 적 있다. 나에게는 유일하게 집으로 빨리 돌아오고 싶었던 여행이었다. 우리 아빠와 고등학교 친구이신 교수님, 동아리 선배 둘, 그 선배들의 아는 형, 그리고 영어를 잘하는 내 친구 이렇게 여섯 명이 한 팀이었다. 끈끈하지 않은 관계였다. 


나는 여행이 잘 맞지 않았던 것이 서로의 취향 차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현대 미술과 신기한 관점의 박물관, 다양한 이민자 식당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다른 분들은 미국 여행은 패션과 쇼핑, 그리고 햄버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수결에서 항상 졌던 나는 20일 여행의 대부분을 삼시세끼 햄버거 가게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나는 탄산을 못 마시기 때문에 햄버거를 매일 먹는 것이 고역이었지만, 다른 선배들은 햄버거 가게 1회용 케첩을 수집하는 것을 여행의 재미로 삼고 있어서 매 끼니 햄버거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햄버거를 잘 먹지 않는다. 쇼핑센터에서 다들 쇼핑 삼매경일 때 나는 차에서 여행책자를 뒤적이며 속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왜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현대미술관도 안 보고 가냐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 여행에서 나도 참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글로벌 챌린지 이전 여름방학에 생에 처음으로  고등학교 동창들과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요즘처럼 여행이 일상화된 환경에서는 첫 해외여행이 어떤 느낌인지 모두들 안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더라도 한동안은 여행 속에 빠져있다. 커피를 마시더라도 비엔나커피를 마시던 빈 시내의 그 작은 카페를 떠올리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학기 중에 잠시 잊었던 '유럽 감성'이 미국 땅을 밟자 폭발했다. 그 당시 나는 해외 경험이 별로 없으니 유럽이나 미국이나 다 똑같이 보였을 것이다. 무엇을 보든 프랑스에서 이랬는데 미국은 이렇다느니, 여기는 독일의 어디랑 비슷하다느니 이런 말들을 했다. 초등학생들이 "야 너네 사과가 먼지 알아?"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은 유치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낯설어서 하나라도 아는 것이 보이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그런 것이다.


지금의 내가 생각하기엔 그때는 어렸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그때  같이 간 선배도 친구도 다 같이 어렸으니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나는 한번 여행을 더 가봤다고 유세하는 아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고 싶다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일부러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현대 미술관은 한국에도 있지만, 나이키 창고형 매장에 파는 엄청난 할인의 에어맥스는 한국에 없다."가 선배들의 지론이었으니까. 


사람은 누구든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반감이 생긴다. 유튜브에서 관심 없는 광고가 계속 나오면 그 브랜드가 꼴 도보기 싫어지기도 하고, 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도 엄마가 "공부해라"라고 말을 하면서 열정이 식는 것이다. 그때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줄였더라면 여행이 좀 더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만히 옆에서 지켜봐 주고 싶었는데, 그것이 참 어려웠다. 그 친구가 너무도 우울해 보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우울증의 그림자가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본다. 최근 몇 년간 너무 우울증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그 친구도 힘들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든 일은 병원을 미리 가보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1절만 했어야 하는데, 혼자 가기 힘들면 같이 가줄까 물어보았다. 며칠 동안은 인사 대신 "괜찮아? 밤에 잠은 잘 자고 밥은 잘 먹어?"라고 물어보았다. 내가 엄마도 아니면서... 그렇게 나는 가만히 옆에서 지켜봐 주겠다는 미션을 실패했다.


내가 이렇게 신경을 쓰다 보니 나의 우울과 불안이 심해졌다. 처음에는 그 친구의 걱정으로 잠을 설쳤지만, 점점 이유 없이 불안하고 잠을 설치게 되었다. 외출하면서도 문을 잠겄는지 걱정이 되어서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가 나가기도 했다. 조금만 먹어도 속이 울렁이고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감정이 전이되기만 한것이 아니라 증폭 된 느낌이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가만히 지켜봐 주자는 미션을 다시 떠올렸다. 인사는 다시 "안녕"으로 하게 되었고, 잠은 잘 자냐는 질문 대신에 "어제 ~~ 봤어?" 같은 이야기로 대신했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생각했지만, 여전히 마음속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가 무의식적으로 툭툭 '요즘 기분은 어때?'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내가 한참 힘들 때 많이 듣던 말이다.


그렇게 2주 정도가 지나서 친구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 요즘 많이 힘들어 보여?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봐서는 여간 내가 신경 쓰였나 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사실 그 친구는 나와는 다르다. 나처럼 우울에 약하지 않을 수도 있고, 불안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내가 어디 이상하나?'라는 생각에 불편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상대가 평소와 다른데 내가 평소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 쉬울까? 나에게는 참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가만히 옆에서 지켜봐 주는 미션에 손을 보기로 했다.


나의 새로운 작전은 접촉의 기회를 늘리고, 같이 있을 때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이 작전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접촉을 늘려 친구가 언제든 힘든 일이 있으면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같이 있더라도 나에게 더 집중을 하여 나의 쓸데없는 잔소리를 차단하고 친구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난 주말에 친구가 카페에 가자고 했다. 나는 읽을 책을 가져간다고 했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 책에 집중했다. 같이 앉아 시간을 공유하면서, 친구를 걱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직까지는 효과가 좋은 것 같다. 


곧 친구네 집도 안정을 되찾고, 친구의 우울한 기분도 다시 밝아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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