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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Mar 09. 2021

그 사람은 내 친구일까, 그의 친구일까?

이혼 이후의 관계에 대하여

이혼 후 3년이 었다. 


처음에는 나의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갈까 봐 숨어 다니기에 급급했다. 천사 같은 나의 친구들은 나를 햇빛 아래에 데리고 나와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을 걸어주었다.


불행이 옮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다음은 불행에서 도망쳐 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목놓아 울기 시작했고, 그동안 힘들었다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100번쯤 힘들었다고 말을 하고 글을 썼다. 흉터가 남았을지라도 상처는 아물었고, 가끔은 그것을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리고, 불행하지 않는 것은 행복한 것과 다른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할 무렵 행복에 대해 고민했다. 애쓰지 않고 사회로 돌아와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기도 했다. 내가 행복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다른 사람들에게 가식덩어리 같아 보일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전남편과 같은 대학교에서 같은 학과, 같은 동아리였다. 졸업을 하고는 같은 회사에 입사했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겹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이혼 후 관계에 대해서 고민할 여지도 많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던 시절, 회사에서 전남편의 직장 동료가 나에게 인사를 하거나 학교 선배를 만나면 어김없이 공황이 찾아왔다. 알 수 없이 불안하고, 숨을 쉴 수 없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떤 날은 긴급하게 회사의 상담센터 선생님께 예약을 넣기도 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반차를 쓰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간단히 목례만 했기 때문에 상대방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몰랐을 것이다. 상담을 하고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으면, 내가 괴로운 것은 과거의 기억 조각이 무의식적으로 올라와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상처가 좀 더 아물 때까지 외부의 자극을 줄이려고 최선을 다했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어느 날은 큰 마음을 먹고 옛날 학교 선배를 만나기로 했다. 전남편과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였던 선배다. 나와는 대학에서 같은 동아리도 하고 수업도 같이 들었기 때문에 상당히 친했었다. 이혼 이후에도 연락은 했지만 근처에서 밥 한 끼 하자는 약속만큼은 참 오랫동안 지키기 어려웠었다.


그 선배의 아내도 참 서글서글하고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부부의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두 사람은 행복하게 잘 지내는지, 이직한 직장은 재미있는지 물어볼 것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서 쿨하게 물어본다는 것은 어려웠다. 내가 애초에 쿨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몇 가지 근황 토크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그 선배는 나를 조금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그 후에도 나는 공통의 사람을 만나보기로 애를 썼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 '그의 친구'로 남기기 아까워서였을 것이다. 나보다 먼저 스타트업을 시작한 선배, 그 사람과 같은 교외 활동을 했던 후배들을 만났다.

애써 노력하지 않더라도 동아리 선배의 부모님 장례식장을 가거나 동기의 결혼식을 가면 자주 공통된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그리고, 차츰 공황은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속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남았다.

부딪히는 사람마다 사정을 설명하자고 하니 너무 버거워서 말을 돌렸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마음에 울타리를 두른다는 것은 실례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전에 찾아왔던 공황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심장이 짓눌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달, 브런치에 초기에 쓴 "한번 다녀왔으니 이제 괜찮지 않을까요?"에서 이야기했던 별로 친하지 않았던 선배에게 연락을 했다. '그때 내가 마음이 힘들었는데, 선배 덕분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 선배는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나의 아저씨'를 봤냐고 물었다. 거기에서 주인공이 말하는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대사가 너무 맘에 들었으니, 꼭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소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마침 우리 대장도 추천을 해 주어서 다운로드하여 놓았던 터라서 끝까지 다 보았다.


정말 그 선배의 말처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은 드라마를 완주하고 상당히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근래에 가장 고민하던 관계에 대해서도 상당히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부분이 있었다. 나의 옛날 모습을 아는 사람들과 재회했을 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은 무겁다.

오늘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날이어서 이런 글을 쓰고, 아무것도 아니게 애쓰고 넘기려 노력하는 중이다.

매일 조금씩 관계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https://brunch.co.kr/@jungeun-le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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