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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Jun 05. 2020

한번 다녀왔으니 이제 괜찮지 않을까요?

글 쓰는 딸과 시 쓰는 아빠 - 4. 행복

"안녕하세요? 남편은 잘 지내시나요?"


한동안 내게 가장 힘든 질문이었다. 이혼을 준비하면서 회사를 다닐 때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가족의 안부를 묻는 일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 입사 전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나를 ‘아줌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가족의 안부를 묻는 인사말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1월 말에 복직을 하고 4월에 가정법원에 서류를 제출하기 전까지는 나의 정체성이 워낙에 혼란스러워서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 바빴다.


지금도 너무 감사한 것이 우리 부서의 파트장님, 셀장님과 주변의 선배들이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 무렵 나는 공황이 상당히 심해서 회사에서 조금만 큰 소리를 내는 남자분이 있으면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회사의 선배님들은 내 얼굴에 핏기가 조금 사라지는 느낌이 들면 나를 데리고 공기를 쐬러 나가주었고, 긴급 약을 먹고도 진정이 안되면 바로 퇴근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주셨다. 아무리 자율 출퇴근이 정착된 회사이더라도 그런 후배가 있으면 신경 쓰일 법한데, 선배님들의 배려로 회사에 잘 적응을 할 수 있었다. 퇴근 후 원룸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내 주변의 천사들이 많음에 항상 감사했다.


이혼 조정기간이 끝나고 법적으로 싱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웠다. 그때 즈음 결혼하는 동기들이 참 많았는데 나는 결혼을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상당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나의 불행이 그 친구들에게 옮겨갈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가족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이 무서운 이유도 있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척들에게는 아직도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은 듯이 잠수를 탔다. 이런 불안한 나의 심리 상태는 두 명의 말 한마디씩으로 상당히 많이 개선되었다.


이혼 후 한 달 조금 더 지난날이었다. 부서에서 분기에 한 번씩 워크숍을 하는데, 6월에 그룹 분들 몇 명과 글램핑을 갔다. 조그만 낚시터가 있는 글램핑 장이었다. 가족들과 캠핑을 다니는 것이 취미인 선배들은 예쁜 캠핑 도구들을 차에서 내렸고,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들으면서 수다를 떨기도 하면서 한적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캠프 사무실에서 낚싯대를 빌릴 수 있었는데, 낚싯대를 몇 대 빌리고, 떡밥을 사서 대여섯 명 정도는 낚시를 즐겼다. 나도 낚시를 하러 따라나섰다. 처음에는 모두 의욕이 넘쳤는데, 아무도 물고기 그림자도 못 본 채로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포기자가 속출했다. 나와 다른 선배 한 명만 낚시터에 남고, 다른 분들은 모두 글램핑 터 쪽으로 돌아갔다.


한참 낚시 이야기를 하다가 그 선배가 내가 가장 걱정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남편 분은 잘 지내세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어서 용기가 났던 모양이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저는 잘 지내고, 남편은 없어요.” 심장이 엄청 크게 뛰기 시작해서 다시 공황이 올 것만 같았다. 솔직히 무서웠다. 그런데 그 선배의 답변은 참으로 신기했다.

“아, 이혼했어요?”

이렇게 간단하게 동요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것은 마치 ‘아, 휴대폰 바꾸셨요?’ 라던가 ‘아, 이사하셨어요?’ 정도의 담백한 의문문이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도 이혼했어요. 재산분할 같은 거도 다 하셨나요? 힘드셨겠네요.”

정말 안부를 묻는 이야기를 몇 마디 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심장의 쿵쾅거림이 잦아들었고, 평온을 되찾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내가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 좋았다. 그냥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이벤트들 중에서 조금 힘든 이벤트를 겪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회사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 친구는 아이를 낳고 복직해서 둘째를 임신한 중이었는데 현실을 직시하면서 긍정적인 모습이 참 멋진 친구였다. 복도를 지나치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역시나 안부를 물어왔다. 

“잘 지냈나? 요새 뭐하고 지내노? 남편 분은 한국 들어왔나?”

“잘 지내고, 남편은 없는데, 전에 그 남자는 한국 안 들어왔다.”

내가 대답했다. 친구는 당황한 기색이 하나도 없이 여전히 밝게 웃는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오, 맞나! 축하한다야. 이제 진짜 니 인생 사는 거네!”

안부를 묻다가 축하를 받은 일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대부분 사람들은 나의 ‘남편이 이제 없어요.’라는 말에 ‘죄송해요.’라고 말하고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괜히 물어봐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내 친구는 내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한 마디의 말속에 진심을 가득 담아서 축하를 해줬다. 다음에 만나면 느긋하게 어떻게 잘 지내는지 말해 달라고 했다. 매일 일상을 나눌 만큼 친하게 지낸 친구가 아니었음에도 그녀의 말이 내 마음을 정말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후로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이런 안부를 주고받을 때, 사람들이 ‘아, 죄송해요.’라고 말하면, ‘축하한다고 말해주세요. 전에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니 기분이 좋더라고요.’라고 말한다. 그렇게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고 나니 안부를 물어준 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나는 나인 그대로 충분한 것이다.


쾡한 눈과 흐트러진 머리, 튀어나온 배가 인상적인 개발자 남편없무새


내가 상태가 좋아지긴 했지만, 부모님은 약간 불만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부모님께서 다시 결혼을 하는 게 어떻냐고 말씀하신다. 나는 “한번 다녀왔으니 이제 안 가도 괜찮지 않을까요?”라고 한다. 부모 앞에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고 하신다. 나는 행복한데, 부모님은 나의 또 다른 행복을 포기하지 않으신 것 같다.





사랑니

          - 이영배


일곱 달 만 집에 온 막내아들

친구 결혼식 간다


피로연에서 잘 못 먹어 탈 난 이빨

아내의 근심 숙졌다 웃자랐다


전부터 준비한 참죽나물 반찬은 어찌하고

절임 쇠고기, 꼬막 조림은 또 어쩔까


장가도 못 간 놈,

어떻게 알았는지 

유명 대형마트 3층 치과 가잔다


내 속은 부글부글 궁시렁궁시렁 

운전하다 한 생각 던진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짜식도 장가나 갔으면 하는데,


아내의 사랑니 아직 웃자랐다 숙졌다 한다




P.S. 아빠 미안해요. 뺀 줄 알았던 사랑니가 안 빠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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