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혹시 궁금한 점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실패감이 들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쭤보았다. 가끔 자기가 진짜 못나 보일 때가 있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마음은 자연스럽기 때문에 슬퍼하면서 그냥 쳐다보면 지나가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수면제가 없이도 잘 수 있는 정도로 좋아졌기 때문에 그 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은 지 3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에는 원인이 뚜렷한 병이니 원인을 해결하면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6개월 정도는 생각하고 치료를 하자고 하셨다. 그때 내가 생각하는 6개월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신상 휴대폰이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6개월 정도이기 때문에 6개월이 지나면 최신 폰도 이전 모델이 되어 버린다. 그런 시간을 계속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항상 마음속에 조급함이 머물러 있었다.
병원에 처음 방문했을 무렵에는 아침 약과 저녁 약, 비상시에 먹는 약을 지어 주셨다. 약에 따라서 효과가 다를 수 있어서 2-3일에 한 번씩 병원을 가 상황을 확인하고, 적정용량을 찾아갔다. 그때는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상당히 걱정을 많이 하셨다. 약을 먹는다고 바로 잠이 들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벽에 눈을 뜨면 다시 잠드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었다.
나는 보통 잠이 들기 전에 머릿속에 보이는 까만 세상이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기억이 없어진다. 그런데 우울증이 찾아오고,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머릿속에 까만 세상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없고 평화로운 까만 세상이 펼쳐져야 하는데, 알 수 없이 불투명하고 거북한 색깔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나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운 마음들이 가지를 치면서 점점 자기들 만의 세상을 만들어 나간 것이었다.
내가 두 가지 매우 좋은 생각을 버리기로 결심하니 나의 평화로운 까만 세상이 조금씩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생각 중 첫 번째는 역지사지의 마음이고, 두 번째는 끝까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건강할 때 먹으면 몸에 좋은 슈퍼 푸드도 몸이 안 좋을 때 먹으면 해가 되기도 한다. 나의 두 가지 생각이 꼭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마음이 건강할 때를 기약하면서 최대한 버려보자고 생각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를 헤아릴 때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넣게 되면 나에 대한 자존감을 더욱 떨어뜨리는 기폭제가 된다. 나는 힘들 때 친구들의 결혼식을 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막 이혼한 애가 결혼식에 오면 기운이 나빠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그런 게 어디 있냐면서 박수의 무게는 다 같다고 이야기해주어도 그냥 그것은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말하는 정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그 무렵 아버지는 나를 걱정한다고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면 외국에서 살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동안 너는 박사를 하고 싶었으니, 일본에 박사를 하러 가는 것은 어떻냐고 말이다. 아니면 외국에서 취업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런 말씀을 듣던 엄마는 갑자기 밥상머리에서 버럭 화를 내셨다.
“야가 무슨 죄 지었나? 왜 부모 형제 다 있는 한국을 떠나서 살아야 하는데? 그냥 지 하고 싶은데 살면 되지. 만다고 사람 눈 피해가지고 살아야 되노! 니도 당당하게 살아라. 눈치 좀 보지 말고.”
그야말로 정답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친구 결혼식을 가려고 노력했다.
내 불행이 옮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
그냥 나는 친구의 행복을 축복해 주고 싶다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끝까지 해낼 수 있다’라는 마음 가짐을 ‘끝까지 못하면 어때’로 바꾸었다.
예전의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두지 못했다. 실패를 생각하면 실패감이 나에게 끝없는 우울을 불러올 것 같아서 마음속에 1cm의 자리도 내주기 싫었던 것 같다. 생각하지 말자고 하면 끝없이 떠오르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실패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니 그 녀석은 내 마음속에서 억척같이 뿌리를 내리려고 했다.
생각을 멈추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평소의 나는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스타일이어서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우울의 나라에 갇히게 된 후부터 생각이 앞을 가로막아서 아무런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휴대폰 요금을 바꾸기 위해 통신사에 전화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엄마에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어렵게 되었고, 지하철을 타기 힘들어졌고,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아진 나를 보면서 곧 예전처럼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했다. 운전을 지금 당장 예전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출근길 지하철에도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항상 다짐했다. 지하철에서 큰 소리를 내는 아저씨를 보면 중간에 내려서 비상약을 먹기도 했지만, 조금만 더 하면 끝내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날들이 1년 2년 길어질수록 나에 대한 실망감은 점점 커 갔다. 그러다 어느 날 택시를 타면서 ‘내가 평생 운전을 못하더라도 대중교통이 이렇게 잘 되어 있는 나라에 살고 있고, 지하철이 답답하면 가끔 택시를 타도 되고, 택시비가 많이 나오면 며칠 밥을 먹여줄 가족과 형제들과 친구들이 있는데, 걱정을 안 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의미가 반드시 지속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제와 똑같은 출근길이었는데, (사실은 어제보다 힘이 들어서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 길이었는데,) 그 날 따라 택시 밖 차들로 꽉 찬 올림픽대로가 예뻐 보였다.
우울증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지만 그 시간 동안 나를 성장시킨 것 같기도 하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조금 모자라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조금 더 다 잡고 다시 건강해진다면 예전처럼 나를 바라보면서 역지사지의 생각을 하고, 끝까지 해내겠다고 투지를 불태워야겠다. 물론 아직은 끝까지 잘 못하는 어리바리한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연습만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