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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Oct 04. 2020

모든 눈물을 글에 담을 순 없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대하여...

사건의 발단은 수세미였다.


며칠 전 우리 집에 수세미가 떨어졌다. 같이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는 여태 말을 못 했지만 사실 나는 혼자 수세미를 못 산다. 어느 날부터인지 수세미뿐만이 아니라, 키친타월과 행주도 혼자 못 사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재택근무 중이어서 점심도 저녁도 집에서 먹는 바람에 설거지통에 그릇이 쌓여갔다.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수세미가 없어서 망설여졌다. 내일은 꼭 수세미를 사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수세미를 사야 한다는 생각에 그날 밤은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새벽 내내 옛날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수세미가 대체 뭐라고 나의 머릿속에 온갖 나쁜 기억들을 몰고 오는 것인가...



숨을 고르고 잠이 들기 전에 어두운 기억들이 머릿속을 계속해서 지나갔다. 


그 사람은 물건이나 순서에 상당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수세미의 경우에는 반드시 겉면은 약간 오돌토돌하되 흠집이 가지 않고, 안쪽은 스펀지가 들어있는 수세미를 선호했다. 나도 그런 수세미를 선호하기 때문에 특별히 반대는 없었다. 하지만 설거지 통에 그릇과 함께 수세미를 넣어두었다가는 난리가 난다. 자신의 아내보다 1700원짜리 수세미가 더 소중한 듯이 화를 낸다. 그래서 한동안 수세미를 건조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침대 속에서 나는 한동안 수세미에 시달리다가 점점 다른 생각으로 어둠이 옮겨 지나갔다. 1회용 행주를 샀다가 밤새도록 듣던 잔소리라던가, 명절에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보다 큰 국냄비를 먼저 씻은 죄로 '너네 집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더냐'는 그의 엄마가 한 가시 돋친 말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고 다녔다. 어떤 말들은 머릿속을 헤집다 못해 마음속까지 다 들쑤셔 놓았다. 이제 나에게는 필요 없는 수만 가지의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명상 앱을 틀고 호흡을 가다듬어 보았지만, 쿵하고 내려앉은 마음이 자리에 돌아오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마지막으로 시계를 보았을 때, 시계는 새벽 5시 2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어 시간을 자고 일어나 멍한 머리로 일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고작 수세미 하나 때문에 엉망이 된 나를 보고 이런 한심한 사람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거지를 안 했으니 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커피 없이 오전 업무를 시작했다. 세 시간쯤 지나니 배가 너무 고팠다. 나는 마트에 라면을 사러 나가는 척을 하면서 얼른 수세미를 집어 왔다.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 라면사는 척을 하는 꼴이 웃기지만, 어쨌든 성공이다. 막상 수세미를 사서 설거지를 하고 나니 고작 이런 일로 왜 이렇게 힘이 들었는지 황당할 따름이다.


저녁 늦게 퇴근한 동생에게 내가 쓸데없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에 대해서 털어놓고 나니 마음인 놓였다. 그리고 그날은 중간에 깨지 않고 잘 수 있었다.








몇 년 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못하는 것이 참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회사에 복직을 하면서 은행도 갈 수 있게 되고, 지하철도 탈 수 있게 되고, 세탁소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공황도 없어져서 약도 먹지 않고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일상이 회복된 다음에는 글도 썼다. 나는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슬픔을 끄집어내어 글을 쓰면서 참 많이 울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쉽게 무너 저 내릴 줄을 몰랐다. 나의 모든 눈물을 글에 담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막 복직을 한 무렵, 나는 그야말로 '개복치'였다. 심장이 쿠크다스로 만들어져 있는지 조그마한 충격에서 바스락 부서져 내렸다. 


공황이나 해리는 겪는 순간이 참 괴롭기 때문에 찾아오기 전에 미리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초조해지고 손발이 저릿저릿한 그때를 미리 알아채고 약을 먹거나 그 자리를 벗어나면 가장 힘든 것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업무를 하다 보면 그러지 못할 순간이 더 많다. 우선 '미리 알아 차림'이라는 것이 사실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이미 불안해지고 초조해지기 시작하면 나의 상태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씩 그런 기미를 느끼고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호흡을 되돌리고 약을 먹으면 꼭 상담 선생님께 자랑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나 스스로 그 순간을 놓치게 되었다.


한바탕 괴로움이 휩쓸고 가면, 해방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마음속에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내가 다시 예전처럼 불안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워진다. 이런 내가 한심해서 내 짝꿍 선배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구한 적이 있다. 그 선배도 가족 중에 공황장애로 고생하시는 분이 있어서 나를 잘 이해해 주셨다. 


'그게 참 신기하데요. 

다들 그렇게 마음속에 큰 지진이 오고 나면 여진이 오나 봐요.  

우리 가족은 공황이 찾아오면 2주 정도는 힘들어하더라고요.

태풍이 지나간 바다 같아요.

바람이 잠잠해져서 파도가 치지 않더라도 헤집어진 진흙이 가라앉는데 시간이 그 정도 걸리나 봐요.

저도 처음에는 답답했는데, 당장 괜찮아지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 선배는 대화할 때 소녀처럼 비유를 아기자기하게 하는 선배였는데, 그날 그 비유는 내 마음에 딱 와 닿아서 꽂혔다. 내 마음의 불안도 그냥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도 다 똑같이 겪는구나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오랜만에 마음이 휘저어진 요즘, 다시 그때를 떠올린다. 짝꿍 선배와 회사 건물 뒤편 공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이야기하던 바로 그 장면이다. 나에게는 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위로가 되는 장면이었다.


공황발작의 '절대적인 지속시간'은 짧다고 한다. 갑자기 미칠 것 같거나 죽을 것 같은 공포는 고작 몇 분 정도 지속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공포가 지나간 다음 그 마음이 완전히 괜찮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처음 그것을 눈치채기 전까지는 한번 공황이 오고 난 다음에는 며칠 동안 두려움에 떨면서 지내야 했다. 또 언제 갑자기 이런 공포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공황이 찾아올지 몰라 지금도 여전히 힘들고 괴롭지만,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2주 정도 지나면 어차피 없어지더라."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모든 눈물을 글에 담을 순 없다. 

그러나 의미 없는 눈물은 2주 뒤면 마를 것이다. 

그리고 괜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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