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은 Jan 29. 2021

나는 매일 용기가 필요해

작은 용기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어릴 때 나는 용기의 단짝이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용감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는 전학을 여러 번 다녔다. 3학년에 처음 간 학교에서 엄마는 반장선거에 도전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전학을 간 일주일 뒤 반장선거에서 손을 들어 출마를 했고, 0표를 받았다. 엄마는 손을 든 것은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너는 왜 널 안 찍었냐고, 다음에는 네가 누구보다 반장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찍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다음 학기에도 엄마는 반장 선거에 나가보라고 했다. 나는 손을 들고, 내 이름에 투표해 1표를 받았다. 엄마는 그때도 칭찬을 하셨다. "그래! 잘했다. 0표보다는 1표가 낫지 안 그렇나. 자기는 자신을 믿어야지!"

그래서인지 4학년 때부터는 신기하게도 반장이나 부반장에 당선이 되었다.

 

나는 용감하게도 길가던 외국인에게도 곧잘 말을 걸었다.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이나 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엄마에게 자랑을 했다. 엄마는 진짜 잘했다고, 다음에는 한국에 와서 무엇이 제일 좋았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어린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Hi, how are you?"정도만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마도 질문을 할 수 있었다한들 대답도 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참 이야기 잘했다. 자꾸 써봐야 영어도 늘지"라고 칭찬하셨다.


그런 일들은 나에게 하나의 모험이었다. 반장선거에서 0표를 받아도 나는 모험의 주인공이었다. 그것은 마치 어느 이야기의 주인공이 항해를 하다 아무도 없이 무인도에 난파된 이야기와 비슷하다. 긍정이 있거나 부정이 있거나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인 것이다.


분명 그대로 자라났다면 나는 매우 용감한 사람이 되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매일 용기가 필요하다. 밖을 나가거나 내 이야기를 꺼낼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주인공이 아닌 느낌이다.


어제는 친구와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의미도 없을 만큼 작은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시도하기에 너무 힘이 든다고 말했다. 친구는 '다들 그렇지만 말을 안 하는 게 아닐까?'하고 말했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보니 용기는 모험의 단짝이 아니었다.

용기는 일상이었다. 모든 일에 용기가 필요했다. 아침에 일어나 일을 하는 것도, 오랜만에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는 것도 용기였다.



용기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식사처럼 일상의 테이블에 올려두는 것이었다. 정성스럽게 매일을 올려두어야 했다. 그리고 용기를 매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이야말로 '지금'을 지켜나가는 것이었다. 


가끔은 아직도 많은 일에 망설이는 내가 답답하다. 하지만 행동을 한다는 것은 용기를 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용기를 낸다는 것은 칭찬받아야 마땅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사소하게 나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사소한 일상에서도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지. 용기가 일상인 것처럼 용기 있는 행동곁들여진 칭찬도 일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했었던 칭찬처럼, 나도 내 주변 사람들의 용기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나이 든 내가 궁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