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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Nov 11. 2020

육아는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a, b, c도 모르고 영국에 온 3살 아들의 영어 분투기

우리 가족이 영국에 온 건 2019년 8월 말이었다. 남편의 학업 때문에 가족이 함께 영국으로 왔다.

당시 아들은 만 2살 반이 조금 넘은 나이로, 한국어도 아직은 서툰 아기였다.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한 뒤, 나는 "물, water", "물 주세요. water please", "쉬 마려워요. I need to pee."와 같은 생존 영어를 집중적으로 알려줬다. 아무 말도 못 알아들을 텐데 꼭 해야 할 말조차 하지 못하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였다.


잠들기 전 꼭 물을 찾는 아이에게 "영어로 말해보자" 하고 "워터 플리스!"라고 하면 물을 주곤 했다.

그렇게 꼭 해야 하는 영어 단어들을 몇 가지 알려주고 난 뒤, 드디어 아들의 어린이집 생활이 시작됐다.



예상했지만 처음엔 정말 험난했다. 우리가 선택한 어린이집의 경우, 가장 처음 선생님들이 집으로 방문을 했다. 선생님들은 아이와 친숙해지는 시간을 조금 갖고, 대화를 나눈 뒤 돌아갔다. 이후 아이는 하루 2시간, 4시간 이런 식으로 어린이집 적응 시간을 늘려갔는데, 엄마가 함께 어린이집 안에 머무르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아이를 맡기고 돌아설 때마다 아이는 대성통곡을 했다. 영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도 유독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 길었던 아들. 이곳에서는 말도 하나 못 알아듣고 얼마나 힘들까 싶은 마음에 마음이 무너졌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들이 잘 적응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내 정신을 부여잡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적응을 시작한 아들이 어린이집을 다닌 것도 어느덧 1년이 됐다. 한 때는 눈을 깜빡이는 틱이 오기도 했고, "으흠 으흠" 헛기침을 자꾸 하는 음성 틱이 오기도 했다.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울기도 참 많이 울었고, 우는 아이 옆에서 나는 나대로 보이지 않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육아는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1년이 흐르는 사이, 아이에겐 가장 친한 친구도 생겼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도 생겼고, 서툴지만 조금씩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도 영어 때문에 늘 스트레스를 받는데, 아직 인생을 3년 반 밖에 살지 않은 이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을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렇게 잘 적응해준 아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영어로 이름을 쓸 수 있게 된 후찬이!



아이의 영국식 영어 발음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못 알아들을 때도 있다.

내가 "그건 어디에 있어?"라고 물으면 아이가 "데에~!"라고 하는데, 그게 there(미국식 영어 발음 데얼)를 뜻한다는 걸 아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하루는 아침에 아이가 "엄마 미역 줘 미역 줘"하길래

"미역국 줘? 엄마 오늘은 미역국을 안 끓였는데" 하니까

"아니 그거 말고 미역 미역"

"응? 뭐 줘?"

결국 아이는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답답해서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달라고 한 건 milk (밀크) 우유였는데, 발음이 하도 기똥차서 내가 알아듣지 못했던 탓.


요즘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알파벳을 배우고 있어서 나도 쉬는 날이나 주말엔 같이 놀이를 한다.

예를 들어, 알바펫 D 소리를 알기 위해서 파닉스로 공부하는데,

"드, 드, 대디(Daddy)! 드, 드 도그(Dog)!" 이런 식으로 소리를 공부하는 거다.


엊그제 쉬는 날이라 아이와 파닉스를 공부했는데 이번엔 알파벳 M을 공부했다.

"후찬아 M(엠)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뭐가 있을까?"


아이는 자신 있게 말하기 시작한다.

"므, 므, 마이코!(친구 엄마 이름), 므, 므, 마크!(로보카 폴리에 나오는 이름), 므 므 마미!

므, 므,....."

고민하던 아이가 내 눈을 바라보더니, 이제 알겠다는 듯 자신 있게 말한다.

"므, 므, 메뚜기!!"


메뚜기가 '므' 소리인 건 알겠는데, 그게 한국말인지 영어인지 헷갈린 모양이다.

그래도 자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어쩌면 아이보다 내가 더 많이 불안해하고 더 많이 걱정하며 살았던 건 아닌가 싶다.

내가 더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만큼, 아이는 자신의 속도에 맞춰 성장하고 커 가는데 말이다. 앞으로 또 아이를 키우며 어떤 어려움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기억을 떠올리며,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더 믿음으로 나아가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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