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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Oct 30. 2020

너 그러다 손톱에 때 낀다?

자식이 부모의 거울인 이유

요즘 아이가 공룡에 빠졌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희한하게도 아이는 만 4살이 다 되어가면서부터 그 좋아하던 소방차를 뒤로 하고 공룡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예전엔 시도 때도 없이 내게 소방차를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소방차 그리기를 2천 번쯤 하는 동안 내가 그리는 걸 유심히 지켜보던 아들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척척척 소방차를 그려냈다.


그런데 관심사가 공룡으로 바뀌면서 이제는 공룡을 그려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공룡 이름을 검색해 도안을 하나 출력한 뒤 함께 그리기 시작했다.

스테고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안틸로 사우루스... 유독 초식공룡들을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나까지 초식 공룡들을 두루 섭렵했다. 특히 아들은 뿔 세 개 달린 트리케라톱스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 녀석은 아마 몇 백 개째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제 트리케라톱스 한마리 그리는 데 40초


공룡을 프린트하는 것에도 한계가 다다르자 나는 아이를 위해 공룡 책 하나를 주문했다. 이제는 더욱 섬세하게 공룡의 피부 무늬나 색깔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아이의 공룡 사랑은 그림에서 그치지 않았다.  레고로도 공룡을 만들기 놀이를 했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초식 공룡들을 하나씩 만들어 역할놀이를 했다.

레고로 (내가) 만든 초식공룡 친구들


하루는 아이가 자기 전에 공룡 책을 읽겠다며 책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함께 엎드려 누운 나와 아이는 한 장 한 장 책을 읽어나갔다. 내가 빨리 읽고 끝내려고 한꺼번에 몇 장을 휙 넘기면 아이는

"엄마, 한 장씩 한 장씩 넘겨야지!"하고 지적한다. 꼼짝달싹 없이 한 장 한 장 공룡을 공부한다.


그렇게 길고 긴 공룡 탐험 여행을 떠다던 중, 이번엔 손톱이 긴 공룡이 나왔다.


"테이지노사우우뜨!"


아이는 손톱이 긴 공룡을 보자마자 이름을 외쳤다. 길고 긴 공룡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 너무 신기했다.


"후찬아, 이 공룡은 어떻게 배웠어?"

"응. 지니 삼촌이 알려줬어 엄마"


아이가 이따금 보는 유튜브 공룡 만화에 나오는 삼촌이 알려줬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새로 사준 공룡책! 보고 또 보고 무한반복 중


"맞아, 여기 책에 보니까, 테리지노사우루스는 길고 튼튼한 손톱을 이용해서 땅을 파고 땅 안에 있는 개미도 먹는다는데???”


내 말을 들은 아이는 눈이 땡그래져 공룡에게 소리친다.


"테이지노사우우쓰야! 너 그러다가 손톱에 때 낀다~?"


아이는 갑자기 내가 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손톱에 때 낀다며 공룡에게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 나는 갑자기 공룡 손톱에 때가 낄까 봐 걱정하는 아이의 말이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평소 아이와 흙놀이를 하고 오면 손톱에 까맣게 흙이 껴 있어서, 내가 손톱을 깎아주며 “흙이나 모래로 놀고나면 손톱에 때가 낄 수 있어서 손을 깨끗이 씻고 손톱이 너무 길먄 잘 깍아야 되요”라고 했던 말을 아이가 기억하고 따라 하고 있었다.

가끔씩 아이가 내 말투를 정말 그대로 따라 한다는 걸 느낄 때가 있는데, 오늘은 마치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이래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는 걸까.


내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이나 행동들을 스펀지처럼 보고 흡수하는 아들. 그래서 '내가 더 좋은 말을 사용하고 예쁜 행동을 해야 하는구나', 느끼며 공룡 여행을 마친 우리는 서둘러 꿈나라로 향했다.


오늘은 손톱에 때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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