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별별 맛
내가 지금 사는 곳은 영국 런던의 서쪽에 위치한 모던 플랫 하우스다.
5층까지 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2층에 살고 있다. 남편 말로는 평수로 따지자면 약 12평이 된다고 하는데, 거실 하나와 방 하나, 화장실이 있다.
집에 취가 처음 출몰한 건 올해 여름이다.
새벽에 공부를 하던 남편이 거실에서 찍찍찍 소리를 들었고, 그다음 날, 내가 주방 선반 밑으로 잽싸게 도망가는 쥐 궁둥짝을 발견했다.
처음 쥐를 봤을 땐 정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남편이 쥐 덫을 놓았고, 1마리의 새끼 쥐를 잡기까지 했다.
건물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쥐잡이 전문가 아저씨를 집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그 아저씨는 정말 쥐를 잡게 생기지 않은, 보슬보슬한 빨간색 니트티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영국 사람이었다. 아저씨는 재빠르게 집안을 살펴보더니 쥐를 잡을 수 있는 약이 든 상자를 설치해 줬다.
2~3주가 흘러 그 젠틀한 영국 아저씨가 다시 집을 방문했고, 그 사이 쥐 소리가 잠잠했던지라, 우리는 쥐가 약을 먹고 어딘가로 가서 생을 마감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쥐에 대해서 잠시 해방됐다고 느끼던 찰나,
엊그제 남편이 다시 쥐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또??"
"응.. 있어.. 어제 내가 들었어."
"에휴.. 또 쥐 잡는 아저씨 불러야 하나?"
쥐를 다시 어떻게 쫓아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와중에 남편은 하나 남은 쥐덫에 초콜릿 조각을 올려두고
주방 선반 바닥에 조심스레 설치했다.
"쥐들이 초콜릿을 엄청 좋아한대."
"진짜?"
"응"
남편은 (어떤 다큐 프로그램에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 아무튼 쥐가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초콜릿 든 작은 쥐덫을 설치해 놓고 저녁을 먹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초록색 구슬이 끝에 달려 있는 은색 귀이개였다.
남편은 특히나 귀를 자주 간지러워해서 주기적으로 귀이개를 이용해 귀를 파는데, 집에 단 하나뿐인 귀이개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안 되겠다. 후찬아! 우리 탐정 놀이하자!"
"아빠! 내가 대장 하고 싶어!"
"좋아! 그럼 네가 대장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귀이개 찾기 탐정놀이가 시작됐다.
의심 가는 거실 소파를 들춰봤지만 후찬이가 그림 그릴 때 쓰는 초록색 색연필 하나만 발견됐다.
우리는 장소를 안방으로 옮겨 바닥을 중심으로 수색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플랫의 안방은 카펫으로 되어있는데, (영국 집들은 바닥이 카펫으로 돼있는 경우가 꽤 흔하다) 휴대폰 불빛을 비춰가던 남편이 침대 옆에서 검은 물체를 발견했다.
"헐. 쥐똥이다!"
"뭐라고????"
"쥐똥이야. 아, 아닌가?"
남편은 유심히 물체를 살펴보더니 다시 말했다.
"아 놀래라. 우리가 벽에 장식한 라벤다가 떨어졌나 봐."
"아 깜짝이야. 깜짝 놀랐잖아."
귀이개 탐정놀이는 계속됐다.
그때였다.
"헐. 충격이다. 여보 쥐똥이다 쥐똥."
"진짜야????"
귀이개를 찾기 위해 침대를 밀어낸 남편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 바닥에는 검은색 쥐똥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우리가 자는데 쥐가 왔다 갔다 했다는 거야 그러면?"
"응 그런 것 같아. 진짜 충격적이다."
남편은 서둘러 부동산에 전화를 했고 관련된 조치를 취해달라고 말했다.
남편과 나는 한동안 서로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남편이 먼저 운을 떼었다.
"그래도 쥐가 후 찬이를 안 깨물어서 다행이다."
"쥐가 사람도 깨물어?"
"깨물지."
"헐..... 너무 소름 돋아 여보."
"우리 침대랑 다 거실로 옮기고 안방은 작업실용으로만 쓰자."
"응"
그때부터 우리의 탐정놀이는 집안 꾸미기 놀이(?)로 변경되었다.
청소기로 모든 쥐의 흔적들을 흡수해버리고 침대를 거실로, 소파를 방으로 옮겼다.
집을 청소하고 아이를 재운 뒤 소파에 앉았다.
기분이 좀 울적했다.
'살다 살다가 방에서 쥐 똥이 다 나오네... '
영국에서 다이어트 모임을 결성하면서 만든 카카오톡 단체 창이 있는데, 그분들과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는 가운데, 한 분이 내게 말했다.
"그래도 저는 정은님 가족 셋이 함께 있는 게 너무 부러워요."
그분은 초등학생 아들의 유학 때문에 영국에 와 계신 아주머니였다. 남편은 한국에, 아들과 자신은 영국에 사는데, 3년 정도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했다.
비록 내 기분이 쥐똥 때문에 울적해졌던 건 사실이지만, 갑자기 그분의 말에 마음이 먹먹했다.
'그래, 쥐 똥이 나오든 소 똥 냄새가 나든, 어찌 됐건 우리 셋은 함께잖아.'
마침 남편이 내 옆으로 왔다.
그분이 해주신 말을 남편에게 했더니, 남편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절대 떨어지지 말자. 그리고 아무리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다고 해도 우리는 잘 해냈어."
마음도 지치고 몸도 지친 나에게 남편의 위로가, 큰 힘이 되었다.
어쨌든 어젯밤 거실에서 잠을 청하는 사이 (우리가 인식하는 한) 쥐는 출몰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집에 쥐가 나오는 게 흔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참 적응이 안된다.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이 내 곁에 함께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나는 감사함을 헤아려 보려 한다.
*커버이미지 copyright:SAM ROWLEYW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