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의 힘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폰 메모장에 그날그날의 감사한 것들을 쓴다.
10가지가 넘을 때도 있도 5~6가지 쓰다가 다 못쓰고 잠드는 날도 있다.
물론 빼먹고 못쓰는 날도 있다.
하지만 감사일기 챕터를 따로 마련해두고 하루하루 이어서 감사한 것들을 써 내려가는 일을 하다 보니, 오늘은 어떤 것에 감사하면 좋을까 자동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감사한 항목에 빠지지 않고 거의 항상 들어가는 내용도 있고, 때로는 아주 색다른 감사 제목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2020년 10월 13일 화요일에 쓴 감사일기 8가지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1. 8:30분부터 줌 트레이닝이 시작인데 8시 31분에 일어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 13일 새벽 두 시 반, 남편이 주방 싱크대 쪽에서 쥐가 있다고 소리치며 단 잠을 자고 있는 나와 후 찬이를 깨웠다. 쥐는 이미 도망갔고, 남편은 쥐덫을 설치해야 하니 불빛을 이렇게 비춰달라 여기를 잡아 달라 등 여러 가지를 요구했다. 나는 너무 졸려서 침대로 달려 들어갔지만 아이는 신이 나서 아빠 곁에서 쥐 덫 설치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잠에 한 번 깨고 나니 다시 잠들기가 너무 어려웠다. 두세 시간을 뒤척이다가 겨우 다시 잠이 들었는데, 나와 남편, 아들 셋 다 늦잠을 자고 만 것. 몇 시지? 하고 폰을 보는데 시간이 8시 31분이었다.
"여보!! 나 트레이닝 시작해야 돼!!!"
다행히 바로 노트북을 켜고 접속을 했다. 내가 제일 꼴찌로 접속했지만, 2분가량 늦어서 조용히 넘어갔다.
휴 정말 큰일 날 뻔했는데 제시간에 일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건강하게 화장실을 잘 가서 감사합니다.
- 모닝커피는 내 오래된 습관인데, 쌉싸름(?)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 꼭 화장실을 잘 가게 해주니 더 좋다. 오늘도 역시 쾌변 성공! 커피에게 고맙고 내 장에게 감사합니다!.
3. 점심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음식점에서 잘 먹어서 감사합니다.
- 내가 사는 곳은 주로 5층 정도 되는 높이의 아파트 단지들이 모여 있는데 마켓도 하나 있고 세탁소도 있고 헬스장도 있고 음식점도 있다. 음식점은 코로나 기간 동안 오래도록 문을 닫았던 RADA라는 곳인데, 남편과 나는 이미 망한 것 아닐까 예측했었다. 하지만 식당 내에서 식사가 풀리면서 다시 이 음식점을 장사를 시작했고, 맛도, 서비스도 훌륭했다. 게다가 가격까지 무척 착하니, 아주 가끔씩 남편과 내가 점심에 나와서 사 먹는 곳이다. 남편은 수제 버거를, 나는 샌드위치를 시켜서 아주 만족스럽게 먹었다. 코로나 덕분에(?) 하루에 두세 번씩 밥을 하는데 오늘은 그중 한 번을 패스했으니 이 또한 감사합니다.
4.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소변을 두 번이나 봤다니 감사합니다.
-아들은 일주일에 세 번 어린이집에 가는데, 집에서는 너무나 완벽하게 화장실을 잘 가지만, 어린이집에만 갔다 하면 소변을 참는다. 그래서 종종 하루 종일 참고 오는 일들이 있어 왔다.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지난주 목요일,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소변을 하루 종일 참은 상태여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집에 오자마자 소변을 콸콸콸 보는 아들에게 어린이집 선생님께 꼭 잘 말하자고 약속한 터였다. 오늘 아이와 다시 만났는데, 아이는 내게 두 번 화장실에 갔다며 힘차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잘 해냈구나. 기특하게 잘 해낸 아이에게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5. 드디어 생쥐를 잡아서 감사합니다.
-새벽에 남편이 쥐덫을 설치할 당시 남편은 먹던 오징어 쥐포 조각을 쥐덫 위에 올려놓았다고 했다. 주로 늦은 밤, 새벽까지 공부를 하는 남편이 쥐가 찍찍찍 거리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데, (영국에는 일반 가정집에 쥐가 등장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오후 6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철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쥐덫이 접히는 소리였다. 조심스레 싱크대 및 선반을 드러내고 바닥을 살펴보니, 정말 조그만 새끼 생쥐가 잡혀 있었다. 밤마다 쥐가 나무를 갉아먹는 소리 때문에 남편이 많이 힘들어했는데, 어쨌든 쥐가 잡혀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남편의 말에 의하면 쥐가 몇 마리 더 있는 것 같다고 했다..)
6. 사골을 많이 끓여놨더니 저녁밥만 해서 편하게 먹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이틀 전, 집 근처 정육점으로 가서 소 꼬리 2kg을 사 왔다. 핏물 빼고 푹 고와 소분해서 냉동실에 저장해 놨다. 비도 조금씩 내리고 으슬으슬한 것 같아 소분한 사골 한 팩을 꺼냈다. 밥만 올리고 사골 데우고 김이랑 밑반찬이랑 먹으니 세상 간단하고 좋다. 오늘은 별다른 요리를 하지 않고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7. 오랜만에 친한 언니와 전화통화, 감사합니다.
가까이 알고 지내던 한 언니가 유방암으로 항암치료를 받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마음이 먹먹했다. 가보지도 못하고, 소식만 전해 들을 뿐이었다. 그 언니를 함께 아는 또 다른 언니가 카카오톡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역시 아이 키우고 정신없고 해서 발인도 가보지 못하고 그랬다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언니도, 나도 떠나간 그 언니를 기억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한 그 말은 참 맞는 말 같다. 혼자서 슬퍼하기보다는 함께 슬퍼하고 함께 위로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멀리 한국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준 언니에게 너무 고마웠다.
8. 아이가 내 곁에서 새근새근 잘 자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2~3주 전까지만 해도 아이 코에서 계속 콧물이 나더니 이제는 콧물도 멈추고 예쁘게 자고 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내 옆에 찰떡같이 붙어서 잠을 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내 감사 일기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아이의 존재, 남편의 존재에 대한 감사함. 당연하게 여기면 정말 당연한 일상이 되겠지만, 감사하게 여기면 매일매일이 감사한 존재들이다. 내가 엄마가, 아내가 될 수 있는 지위를 준 소중한 내 가족. 이 머나먼 타지에서 그들이 내 곁에 있음에 나는 오늘도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