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고립 4일 차 일기

자연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by 짠맛토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에 출몰한 뒤 세상 거의 모든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방식부터 시작해 일상의 작은 생활 습관들, 일하는 방식, 먹는 방식 등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작년 9월, 영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나는 신선한 공기와 바삐 움직이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설렘을 느꼈다.


'이 곳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좋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너무 많았고, 하나씩 다녀보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에 감탄하곤 했다. 사이언스 뮤지엄 랩실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과학의 원리를 직접 만들어보고 경험하면서 알도록 했다. 미술관 한편엔 커다란 칠판이 있어서 마음껏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공간이 준비돼 있었다. 그렇게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구경하고 나오면 거리에서는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나무 막대를 들고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어내는 마법사 같은 아저씨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있다.


그뿐인가. 어디를 가더라도 드넓게 펼쳐진 공원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지나가는 다람쥐를 보고 산책하는 개들에게 인사하고. 자연 친화적인 놀이터도 곳곳에 있다.


이렇게 런던이 주는 매력에 한 번 풍덩 빠져볼까 하고 마음먹는 찰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졌다.

별 것 아니겠지 여겼던 처음 생각과는 달리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고, 3월 말, 필수 목적이 아니고는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봉쇄조치가 시작됐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집 앞 공원과 마트가 다였다. 다행히 우리가 구한 집 바로 옆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고 5분 정도 더 걸어가면 동네에서 꽤 큰 공원이 있다. 정말 집 옆에 큰 공원이 있다는 게 우리에겐 크나큰 위안이었다. 오죽하면 나는 집을 구한 남편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


"여보, 어쩜 코로나 터질 걸 알고 이렇게 공원 바로 옆에다가 집을 구해놨어?"



영국 정부는 운동을 위한 외출은 허락하는데, 우리 가족은 날씨가 허락하는 날은 공원에 가서 운동을 했다. 달리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공차기도 하고. 가끔씩 달리기 하는 사람들이나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긴 하지만 공원이 워낙 넓어서 거리두기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게라도 가끔의 햇빛을 쬐고 운동을 하고 오면 조금은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걸 느낀다.


그렇게 3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제한 조치가 풀렸다가 묶였다를 반복하다가, 모두가 기다리는 연말의 크리스마스 (*특히 유럽권에서의 크리스마스는 1년 가운데 가장 성대한 기념일로, 두세 달 전부터 거리에 반짝이는 조명을 설치하면서 이 날을 기다린다)를 며칠 앞두고 다시 가장 강력한 4단계 봉쇄조치가 시작됐다.


기존에는 세 가족이 만남을 할 수도 있다고 공지했기 때문에 지인들끼리의 만남도 계획해두었는데, 모든 것이 다 취소되고 말았다. 허무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일단 빨리 받아들여야 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정부가 이런 판단을 한 건 변종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확산하기 때문이었는데, 이 뉴스가 나오자 런던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기차역 등이 붐볐다고 한다.


우리는 차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집에 머무르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기에 런던을 탈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만, 가족을 방문하려고 계획했던 사람들은 급히 마지막 표를 구해 런던을 빠져나갔다.



오늘 아침엔 올해 마지막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내일부터 내년 초까지는 방학), 비가 오지 않는 틈을 타 집 앞 공원으로 향했다.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더 없었는데,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해서 땅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질퍽질퍽한 땅을 밟으며 걷기 시작했다. 뛰어가는 사람들 몇 명을 마주친 뒤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거의 사람이 없었다. 그 순간, 내 귓가에 짹짹짹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서 듣고 있자니, 생각보다 새소리가 컸다. 새들은 내 귀를 간지럽히는 듯 지저귀며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이 소리들을 폰 비디오로 담기 시작했다.

새소리, 백조 소리, 백조가 날갯짓하는 소리, 분수 소리... 그렇게 가만히 자연이 주는 소리들을 듣고 있자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자신의 몸을 연신 핥아대는 백조가 "그러니까 자연에게 좀 잘하지 그랬어" 하며 인간을 나무라는 것 같았다. 유유자적하며 강물을 헤엄치는 백조 한 마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바이러스 때문에 어디도 가지 못하는 내 신세가 처량해 보였다.


지구와, 자연과, 동물과 친하게 잘 지내야 우리 인간의 삶도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을, 2020년 한 해동안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1시간가량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찍은 영상을 다시 한번 본다. 자연이 주는 소리들은 참 아름답다. 과연 우리 인간은 자연에게 아름다운 존재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침대 밑에서 쥐똥을 발견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