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없어 서러운 사람 여기여기 모여라
나는 언니가 없다. 여동생도 없다. 1살 위의 오빠만 있다.
어릴 때부터 같은 성별의 언니나 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예쁜 옷을 같이 입거나 화장품을 공유하는 것도 나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였다.
열아홉,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을 떠났다. 군인이라는 신분 탓에 청주, 사천, 오산, 수원, 서울 등으로 거처를 옮겨가며 살았다. 부산에 함께 있을 때는 가깝게 지냈던 오빠였지만, 어른이 되고 사는 곳이 달라지자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이 아니고는 얼굴 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다 보니 어느덧 내 나이는 서른일곱, 30대 중후반에 이르렀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은 알기 어렵다. 언니가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를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그 유대의 정서를 모른다. 그런데 최근, 나의 ‘언니’ 빈자리를 유튜브 알고리즘이 채워주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강의 채널 몇 개를 구독하는데 그 때문인지 유튜브 알고리즘은 어느 날 내게 '곽정은의 사생활'이라는 채널 콘텐츠를 선사했다.
'곽정은이 누구지?'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는 이름만 듣고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채널의 영상 하나를 보고 바로 네이버로 검색했다. 곽정은 언니가 방송에서 주로 연애 상담도 많이 했고 코스모폴리탄 잡지의 기자 생활도 오래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정은'이라는 이름이 원채 흔해서, 학교 다닐 때부터 같은 이름이 반에 한 두 명씩 있었다. 심지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동생도 나와 이름이 같다.
하지만 내가 가진 '백'이라는 성처럼 '곽'이라는 흔치 않은 성을 가진 이 언니에게 조금씩 끌리기 시작했다. 성은 달라도 이름은 같은 언니가 풀어내는 인생의 스토리와 통찰이 내 가슴에 콕 와닿았다. 유튜브를 찍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는 영상에서 정은 언니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그런 언니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많은 댓글에서 정은이 언니가 찐 랜선 언니라고, 언니처럼 멋지고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랜선 언니!
비록 나는 곽정은 씨를 알지도 못하고 연락처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랜선으로 알게 된 곽정은 언니는 내 빈 공간, 원래부터 없었던 언니의 영역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언니가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느낌들이 생겨나면서 왠지 모를 든든함과 안정감이 생겨났다.
나보다 먼저 인생을 몇 년 더 앞서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뒤에 따라오는 동생들에게 지혜를 나누는 정은 언니가 참 멋있었다. 아픔도 실패도 솔직하게 나누며, 그래도 이겨낼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정은 언니가 참 멋있었다. 그리고 나도 곽정은 언니처럼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그런 멋진 백정은 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올해 44살이라고 했다. 나보다 7살 많고, 멋지게 당당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능력 있는 언니! 이 언니가 해주는 조언들을 곱씹으며 7년을 열심히 살아내면, 나도 곽정은 언니처럼 멋진 백정은 언니가 될 수 있을까? 오늘도 언니의 랜선 조언이 기다려진다.
사진 출처: 곽정은의 사생활 유튜브 채널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