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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Jul 12. 2021

점점 멀어져 간다. 고기와

채식 인생 3년 차의 기록

오늘은 문득 채식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주 업무상 만난 한 신문사의 편집장이 주간지를 주었는데 이래저래 정신없어 가방에 넣어뒀다가 주말에 찬찬히 기사들을 들여다보았다.


여러 글 가운데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기사가 있었으니, 바로 도축장의 노동 현실을 취재한 심층 기사였다. 편집장이 전해준 이야기로는, 기자들이 현장에서 도축장 노동을 한 달가량 직접 경험해 이런 기사가 나왔다고 했다.


우리는 식탁에 올라온 고기는 쉽게 접하고 맛보지만, 이 고기가 어떤 과정을 통해 누구의 손길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사를 읽으면서 알려져 있지 않던 도축장 노동자들에 대한 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문득 내 기억은 내가 처음 채식을 시도하던 2018년 겨울로 향했다.



나에게 '채식'이라는 선물을 건네 준 건, 아이가 두 돌쯤 되었을 때 다시 사회에 발을 붙여보겠다고 다닌 아나운서 학원이었다. 하루는 수업을 듣기 위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는데, 하필 자리가 없어서 가장 앞자리 2번에 앉게 되었다. 고속버스 기사님들은 TV를 끄는 게 대부분인데 그날 내가 탄 기사님은 뉴스 채널을 틀어놓고 운전을 하셨다. 졸리지도 않고 해서 뉴스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갑질 폭행 논란에 휩싸인 양진호 씨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세상에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 뉴스를 계속 보는데 순간 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양진호 씨가 직원들에게 살아있는 닭을 던지고 직원들이 긴 검으로 그 닭을 죽이는 게임 같은 걸 하는 장면이었다.


'세상에....'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동물에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 일이 있은 뒤로 닭으로 만들어진 요리는 먹기가 싫어졌다. 뉴스의 그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관심을 갖게 됐다. 학원에서 [인터뷰 기사]를 작성 해오라는 숙제를 내줬는데, 인터뷰 인물로 동물보호단체의 대표이자 영화감독인 임순례 감독을 선택했다.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다 [Eating Animals,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넷플릭스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What the Health]까지 보면서 채식에 대한 생각은 확고해졌다.


수업을 같이 듣는 동생에게 나의 이런 생각을 나누었다. 동생은 내 생일날 채식에 관한 책을 선물했다.


"언니, 이거 꼭 읽어봐요~!"


꼬깃꼬깃 예쁜 손 편지까지 끼워 선물한 그 책은 다름 아닌 '채식의 유혹'이라는 책이었는데, 동생은 책일 절판돼 새책을 구하지 못하고 중고 서점에서 구입해 선물했다고 했다. 그 동생은 이미 채식을 8년째 해오고 있었는데, 인도에서 살면서 요가 자격증을 따오기도 하는 등 몸을 수양하고 가꾸는 데 일각 연이 있는 동생이었다. 동생이 선물해 준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나는 채식이 내가 입게 될, 나와 가장 잘 맞는 옷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3년 가까이가 지난 지금, 나는 '채식'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한 명의 소박한 채식인이 되었다.



나는 채식이 좋다. 몸이 가벼워져서 좋고, 육식으로 지구를 병들게 하지 않아 좋다.  때는 가족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또한 받아들였다. 가족들에게는 가족들 만의 페이스가 있고 삶이 있으니, 그들삶을 나처럼 바꿀 필요도 없고, 그렇게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반쪽 되는 남편은 여전히 고기를 사랑하는 육식 파이며, 나의 쑥쑥 커가는 아들 또한 고기를 잘 먹는다. 그래서 나는 이들에게 고기반찬도 많이 해준다. 다만 내가 먹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육식과 채식이 공존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라는 사람이 살아가는 내 삶의 경계 안에 육식은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살아간다. 이제 내 삶에 채식은 하나의 신념이자 가치, 정체성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뭐라 하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간다. 가까운 채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은 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수많은 다른 채식인들의 삶을 엿본다. 그래, 나만 이상한 게 결코 아니었어. 작은 안도와 위로 속에 나의 채식인 라이프는 앞으로도 쭉-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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