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키워드 알람 설정 제대로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사용해봤을 법한 당근 마켓. 중고거래를 인근 지역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나 역시 중고 거래에 대한 거부감은 크게 없는 편인데, 특히 육아를 하면서 한철 쓰면 되는 장난감이나 책 종류는 중고 거래를 애용해왔다.
영국에서 귀국 짐을 정리해 한국으로 올 때 무게가 많이 나가는 책들 역시 웬만하면 다 중고거래로 정리를 하고 왔다. 한국어로 된 유아 책은 한국 엄마들이 모여있는 네이버 카페를 통해, 그 외 생활 물품들은 페이스북 동네 중고거래 그룹을 이용해 판매했다. (중고거래는 해외 살이를 두 번째 하면서 터특한 짐 줄이기 노하우이기도 하다.)
그렇게 중고거래로 짐 부피를 줄이고 한국에 돌아온 우리 가족에게 남은 살림살이는 큰 박스 다섯 개와 큰 캐리어 2개, 작은 캐리어 2개, 아이 자전거가 전부였다. 짐을 풀고 하나 둘 필요한 살림살이를 다시 장만했다. 특히 무게 나가고 부피가 큰 아이 장난감은 거의 가져오지 못했던지라 아이 방이 휑 했다. 이때부터 나의 당근 마켓 키워드 설정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린이 도서, 과학도서, 블록놀이 같은 것들을 키워드 설정해놓고 알람이 뜨면 바로바로 확인해 신속하게 거래했다. (중고거래에서 저렴하게 잘 나온 물건은 댓글 속도가 거래의 승패를 좌우한다.) 가까운 곳에서 물건을 바로 가져올 수 있으니 만족도는 높았다.
그렇게 아이 책과 장난감들을 장만하고 난 뒤 주춤했던 나의 당근 마켓 사용은 최근 들어 ‘나도 좀 스타일입게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늦깎이 패션 열정에 힘입어 다시 불이 붙었다. 열아홉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작된 여군으로서의 생활 9년. 남들은 이 옷 저 옷 입어보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던 그때, 나는 전투복 아니면 근무복, 외출 나갈 때는 정복, 체육 할 때는 체육복, 행사할 때는 예복. 딱 이렇게 5가지 옷을 정해진 규칙대로 입어야 했다. 당시 체육복 상의를 하의 안에 집어넣어야 했으니 내게 패션 센스가 자리 잡았을 리 만무하다.
그렇게 패션에는 문외한이었던 내가 최근 애정 하는 유튜버 밀라논나 할머니를 만나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옷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표출하고 개성을 드러내는 밀나논나 할머니가 참 멋있었다.
‘그래, 나도 이 할머니처럼 멋지게 옷도 입고 나를 잘 표현하며 살고 싶어.’
이렇게 시작된 나의 ‘패션공부’는 여기저기 유튜버들의 스타일 조언을 주워들으며 작은 시도들을 해보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나에게 맞는 스타일은 어떤 건지 알고 싶지만 모든 옷들을 다 새 돈 주고 사긴 아까우니 실패할 확률을 고려해 당근 마켓을 뒤져보기로 했다. 며칠 전, SPA 브랜드 가운데 힙한 패션을 선보이는 젊은이들이 선호한다는 자라(ZARA) 를 키워드 알람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미개봉 새 상품 같은 게 뜰지도 몰라’하는 기대와는 달리 너무 옛날 자라 옷을 올리는 분들도 많았고 알람이 울려 들어가 보면 자라 키즈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 자라 키워드로 울린 알람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첫 번째 알람
감자 라면을 판매하는 당근 유저의 알람. 자라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예리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다.
두 번째 알람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 바이블 같은 책,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를 내놓은 당근 유저. 잘 ‘자라’고 있는 내 아이를 한번 더 생각하게 해준다.
세 번째 (내가 이 글을 쓰게 만든 알람)
용인의 공기 좋은 산자락에서 자란 풋고추를 선착순 15분에게만 배송드린다는 친절한 당근 마켓 유저. 심지어 난 용인에 살지도 않는데. 곳곳에 두 군데나 숨어있는 자락과 자란을 감지해내는 당근마켓의 훌륭한 키워드 검색 기능, 그리고 탐스러운 풋고추 사진에 나는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그냥 큰 생각 없이 설정해 놓은 자라 알람이 내게 이런 웃음을 선사할 줄이야! 자라, 자라,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자라 키워드 알림이 뜰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려고 했다. 하지만 직접 입어보고 눈으로 스타일을 확인해봐야 하는 옷의 특성상 당근 마켓 옷 거래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자라 키워드 알람의 해프닝은 이쯤으로 접어두고, 진짜 내 스타일을 찾기 위해 진짜 자라 매장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