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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Oct 09. 2021

'오징어'에 대한 고찰

번쩍이는 불빛에 몰려드는 오징어 vs 자본주의의 화려함에 몰려드는 인간

오징어 게임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 최고 인기를 갱신한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핫 트렌드가 되었다. 여기저기 패러디가 넘쳐나는가 하면, 미국 방송 CNN의 온라인 홈페이지에는 아예 ‘Squid game’ 섹션이 생기기도 했다.


나 역시 오징어 게임을 1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한 번에 정주행 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한 번 시작하면 중간에 잘 끊지 못하는 성격에, 눈이 빨개질 때까지 밤을 새워 오징어 게임을 시청했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을 한 데 모아놓고 무자비한 게임을 이어가는 내용이 처음에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지만,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함께 '돈'을 소재로 한 공감 요소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작품에 푹 빠져들었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돈의 위력을 잘 묘사함과 동시에, 돈 앞에서 결코 잃지 말아야 할 인간성을 이야기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평소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거의 보지 못하는 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죽어가는 오징어 게임은 이상하게도 몰입되었다. 돈이 갖는 위력, 돈 앞에 무기력한 인간, 돈을 얻기 위해 위선과 거짓을 펼치는 인간의 이기심까지....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징어 게임은 내가 경험한 돈과 자본주의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빚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생활비가 빠듯해 속상하고 힘들었던 기억, 더 돈을 모아야 한다며 스스로를 옥죄었던 내 모습들이 보여 넷플릭스의 stop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렇게 오징어게임을 몰아 본 내게 며칠 전 무릎을 탁 치는 깨달음이 왔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나는 누구인가]이 도착해 책의 한 챕터를 읽다가 밑줄을 좍 그었다.


자본주의에 포획된 인간 “오징어”

보통 시인들이 자본주의를 집어등에 비유합니다. 집어등은 야간에 오징어나 고등어, 정어리 같은 물고기를 잡을 때 불빛을 따라 모여드는 물고기의 성질을 이용해 켜 두는 등불을 말합니다. 실제로 속초에 가보면 집어등을 켜놓은 배 가까이로 오징어들이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하라는 시인은 자본주의에 포획된 인간을 '오징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쇼윈도의 밝고 화려한 세계를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이지요. 인터넷을 켜고 포털사이트로 접속하는 순간 온갖 쇼핑몰들이 집어등을 켜고 유혹합니다. 그 세계에 한번 발을 들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책 [나는 누구인가 중에서]


오징어 게임의 '오징어' 땅바닥에 오징어 모양을 그려놓고 하는 어린이들의 놀이이지만, '오징어'라는 속성이  때문에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과  같았다. 화려한 빛에 반응하는 오징어가, 화려한 돈에 몰려드는 사람과 다를 바가 는 것이다.


시인 유하

제목: 오징어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 오든 광명을!   


ㅡ시집『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문학과 지성사, 1991)


눈앞의 찬란한 저 빛에 이끌려 모여드는 오징어 떼. 그러나 시인은 이것이 죽음이라고, 모든 광명을 의심하라고 외친다. 옆에 있던 사람이 게임에 이기지 못해 죽어나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오징어 게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 그들은 천장 위에 매달린 거대한 돈다발 통에 압도당해 다시 게임장으로 모여들었다. 내 삶에 자유와 부를 선사할 돈다발! 눈앞에 그 찬란한 돈다발이 빛을 내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돈다발은 단 한 명의 참여자를 제외한 모두의 죽음을 의미했다.


자본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오징어 게임이 흥행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돈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의심하라,  오든 광명을!'이라고 말한 시인 유하의 외침이  가슴에 울린다. 빛나 보인다고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돈의 이면에는 죽음에 이를 위험성이 숨어있음을,  앞에 결코 잃지 말아야  것은 '인간됨'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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