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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Oct 23. 2021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지렁이의 공손한 꿈틀거림

원래 나는 타인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최대한 발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누가 좀 싫은 소리를 해도 못 들은 척,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하고 말거나 뒤에서 몰래 그 말을 곱씹으며 혼자 상처 받기도 했다.


그런데 결혼 7년 차에 접어들어든 나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육아로 경력이 단절돼 사회로 다시 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기도 했고 해외에서 유학하는 남편 뒷바라지하며 생계를 책임지기도 하는 등 난이도 ‘상’에 해당하는 인생의 시절들을 겪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할 말은 하고 있은 내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목소리를 내는 남편도 나의 이런 변화에 한 몫했다. 남편은 나와 ‘정반대’에 가까운 사람인데, 집 주변 하천에서 악취가 나거나 기름유출 같은 게 보이면 민원실로 전화해 여기 와서 점검해달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본인은 [민원왕]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계정을 만들어 영상을 찍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실천에는 옮기지 않고 있다.)


하루는 서울로 출근을 했다가 기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승객들은 각자 마스크를 쓴 채 조용히 잠을 자거나 폰을 만지고 있었다. 나는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아주 큰 소리의 남성 목소리가 열차 안을 가득 채웠다.


지금 대선 구도가 흘러가는 가운데…(중략) 박근혜 정권 때를 기억하시겠지만 … “


대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방송하는 유튜브 채널의 진행자 같았다. 소리 볼륨을 최대로 해놓고 듣는지 진행자의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런데 이 시끄러운 소리가 몇 분 동안 계속되어도 열차 칸에 안에 타고 있던 많은 승객들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의아했다. 내게는 너무 시끄러운 이 소리가 저들에겐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인가?


결국 나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 바로 앞에 앉은 60대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내가 손으로 조심스럽게 어깨를 톡톡 하자 아주머니가 뒤를 돌아봤다.


이거 소리가 새어 나와요.”


알고 봤더니 아주머니는 귀에 유선 이어폰를 꽂고 있었지만 그 잭이 폰과 제대로 연결돼있지 않았던 것. 아주머니가 휴대전화에 이어폰 잭을 다시 꽂자 시끄럽게 울리던 소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나는 그 후로 일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나저나 그 칸에 타고 있던, 못해도 20명은 될 것 같던 그 사람들은 목적지까지 그냥 쭉 그 소음을 참으려 했던 건지 궁금했다. (하긴, 요즘엔 귀에 에어팟을 꽂고 있는 사람도 많아서 소리를 못들은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오늘 아침엔 이런 일도 있었다. 토요일 아침, 모처럼 늦잠을 자보고 싶은 나의 소망은 고이 접어두고 7시부터 일어난 아들과 거실에서의 캠핑 놀이가 시작됐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먹을 것을 바구니에 담아 캠핑장(거실)으로 향했다. 거기 앉아서 먹을 것도 먹고 밤이 되었다는 설정으로 갑자기 잠도 잤다가 다시 일어났다가 하는 그런 종류(?)의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윗집에서 쿵쿵 쿵쿵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소리를 들은 게 처음은 아니다. 바닥에다가 뭘 찧는 것 같기도 하고 마늘 빻는 소리 같기도 한, 아주 귀에 거슬리고 불편한 소음은 30분이 넘도록 이어졌다.


“안 되겠다. 후찬아. 엄마가 경비실에 전화를 좀 해볼게.”


경비아저씨께 동호수를 말씀드리고 30분째 쿵쿵 쿵쿵 찧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고, 연락을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잠시 뒤, 소음이 뚝 끊기더니 경비실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드렸더니 그런 소리 낸 적 없다고 하면서 아침부터 전화한다고 역정을 내시네요. 죄송합니다. “

하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아니, 잠깐만. 이건 경비실 아저씨께서 죄송할 일이 아니잖아요??


정말 황당했다. 소음을 낸 적이 없다고 하면서 30분째 지속되던 쿵쿵쿵 소리가 갑자기 싹 사라졌다. 때는 8시 40분경이었는데, 새벽도 아니고 그 시간에 전화했다고 경비아저씨에게 역정을 냈다니… 내가 괜히 경비 아저씨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전화 한 통으로 소음은 쥐 죽은 듯 사라졌고 아이와 나는 캠핑 놀이를 이어서 하며 놀았다.



예전엔 그냥 참고 말았을 일들. 하지만 이제는 그냥 혼자 바보처럼 참는 입장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말을 해야 상대도 문제를 알아차린다. 기차에서 내 앞의 아주머니는 자신이 이어폰을 꽂고 있어 휴대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온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셨다. 내가 말해주자 연결을 다시 꽂았다.


우리 집 위층에 사는 사람 역시 내가 쿵쿵쿵 소리가 들릴 정도로 심하게 소음이 난다는 걸 알려줬기 때문에 그 행동(무엇인지는 몰라도)을 멈췄다. 그 사람이 낸 역정으로 인해 경비 아저씨께서 좋지 않은 소리를 들으신 건 속상하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부당하거나 문제라고 생각되는 일이 생기면 참는 쪽보다는 말해서 문제를 알리는 쪽에 서고 싶다. 혼자만 끙끙하며 살아온 세월이 길어 나도 내가 이렇게 바뀔 줄 몰랐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기본적 예의와 매너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어떤 방법으로든 ‘꿈틀거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이 꿈틀거림은 ‘상대와 똑같이 해줄 거야’라는 심보로 나쁘게 내뱉는 삐딱함이 아닌, ‘당신이 이 상황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제가 알려드립니다’의 마인드로 전하는 ‘정중함’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사진출처: getty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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