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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Dec 22. 2021

빨래 돌려놓고 그냥 자기 있기 없기?

고요한 밤 열일하는 너와 잠못드는 나

“(아파트 월패드 작동음) 차량이 입차하였습니다.”

“우와 아빠 왔다~~!!!!”


하루 중 가장 반가운 소리가 거실을 울린다. 재택근무를 마치고 아이에게 부랴부랴 밥을 먹인 뒤, 엄마 놀아줘를 랩처럼 불러대는 아들과 한시간 쯤 놀아줄 때 저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거실에 앉아 캐치볼을 하고 있는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구세주 남편이 지하 주차장에 입성했다.


남편과 저녁을 먹고 나서 여기저기 너저분한 집을 치웠다. 혼자서는 치울 엄두가 잘 안 나지만 둘이 함께 하면 생각보다 금방 끝낼 수 있다. 오늘 설거지는 내가 맡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를 들었는데 남편이 외친다.


“여보 검은 빨래 지금 돌릴게!”

“아 진짜? 9시 넘었는데 그럼 또 건조기 때문에 잠 못 자”

“흰 빨래 아니니까 괜찮지~~ 걱정 마~”

“그래? 그래그래”


남편은 빨래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세제, 섬유유연제도 직접 고를 정도다. (결혼하고 지금껏 내가 빨래 용품을 사본 적이 거의 없다) 특히 남편은 흰 빨래의 경우 세탁기의 삶음 기능을 이용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걸로 돌리면 2시간 넘도록 빨래가 안 끝난다.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흰 빨래든 색깔 빨래든 표준 코스를 이용하는 걸 선호한다. 내가 흰 빨래를 삶음으로 돌리지 않으면 남편이 킁킁 냄새를 맡아 묘하고도 기똥차게 알아차린다. 때문에 우리 집 빨래는 대부분 남편이 돌리는 편이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긴 빨래 시간이다. 남편이 집에 와 빨래를 돌리고 이어서 건조기까지 돌리면 거의 밤 12시, 1시를 넘어가기 일쑤다. 빨래 기다리다가 늦게 자고 피곤해하기를 여러 번, 나는 웬만하면 내가 낮에 돌리겠다고 하지만 빨래 박사 남편은 그래도 본인이 돌리고 싶어 한다.


아무튼 그리하여 오늘도 빨래는 늦은 시각 돌아갔다. 평소 나보다 늦게 자는 편인 남편이 오늘은 피곤한지 안대까지 하고 자리에 누웠다. 나는 평소와 달리 이것저것 하다가 우연히 “띵띠리띠리리~” 하는 빨래 종료음을 듣고야 말았다. 그 시각 남편은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결국 내가 빨래를 세탁기에 꺼내 건조기에 넣고 돌렸다. 건조기에 넣어둔 채 오래 두니 옷이 많이 줄어드는 것 같아 끝나면 꺼낼 기세로 식탁에 앉아 긴 기다림을 시작했다. 해야 할 일들을 폰으로 좀 처리하고 나니 어느덧 시계가 밤 12시를 향한다.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목은 뻐근하다.


문득, 늦게 돌리지 말자고      듣지! 하는 생각에 남편이 미워졌다. 그러다가  평소에  이렇게 빨래가  되기를 기다렸을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해지기도 했다.  사람의 신발을 신어봐야  사정을 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오늘 나는 남편의 빨래 신발(?) 처음 신어 봤다. , 이래서 남편이 아침마다 피곤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내일 나도 일찍 사무실로 출근을 해야 하는데 건조기는 아직도 1시간 7분이나 남았다. 더 이상 기다리긴 무리일 듯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돌려놓고 잘 걸. 그래도 기다린 게 아까워서 더 기다리고 싶지는 않아 침대로 향한다. 다음부터 빨래는 미리미리 낮에 돌리거나 주말에 돌려야겠다고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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