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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Dec 19. 2021

결혼 7년 차, 넉살을 득템 했습니다

‘시댁에 폰을 놓고 왔을 때’ 편

토요일 오후, 차로 10분 거리에 사시는 시댁에 갔다. 도련님은 놀러 가고 없고 아가씨와 어머님, 아버님이 계셨다.


평소 가까운 거리에 살아 자주 시댁에서 밥을 먹는데, 오늘은 집에 있는 이것저것 음식들과 최근에 맛있게 담은 김치가 메뉴에 올랐다. 전라도 강진 출신인 어머니의 맛깔난 김치는 언제 먹어도 밥 한 그릇 뚝딱하게 만드는 마법의 반찬이다.


그렇게 밥을 든든히 먹고는 뜨듯한 장판 위에 옹글 옹글 앉았다. 세 달 뒤쯤 결혼을 앞둔 아가씨와 함께 인터넷으로 예식 당일 입을 한복을 찾아봤다.


“언니 이거 어때요? 노란색인데 너무 이쁘지? 근데 대여비가 좀 비싸”

“그래? 색깔이 아가씨랑 딱 어울리는데. 하루뿐인 날 입고 싶은 거 입는 게 좋지 않을까?”

“(그 한복을 입은 사진을 보여주며) 착샷은 이래”

“어 잠깐만. 좀 부 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도 사진을 보더니

“그러게 좀 부 해 보이네. 우리 그냥 싼 거 하자”

“크크크 그럴까?? 그럼 그냥 이 사이트에서 고르자”


그렇게 어머니와 아가씨, 나는 한복 사진을 구경하다가 주말 저녁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가 끝나가는 9시가 되자 아이가 졸려했다.


“여보 애 졸리다. 가자 가자”

“그래 가자. 엄마 아빠 저희 갈게요!”

“(아버님) 그려 알 가져가 알”

“잘 먹을게요. 후찬아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하고 와”

“(고개를 꾸뻑하며) 안넝히 주무세여”


닭장에 닭들이 낳은 알이며 떡이며 이것저것 싸주신 음식을 양손에 들고 시댁을 나섰다.


“우와 진짜 춥다!!”

“여기 봐봐 얼음 얼었어!!”

“춥다 춥다 빨리 가자~~~”


우리 셋은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촐싹대며 차로 뛰어갔다. 10분 정도 운전해 집에 도착한 뒤 아이와 양치를 했다. 빨간색 크리스마스 느낌의 파자마 바지로 갈아입고 잘 준비를 하는데 어라? 폰이 안 보인다. 아이 방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보라 했더니 내 전화기는 시댁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상태다.


“후딱 갔다 올게!”

“응 내가 아기 재울게”

“응응”


잠옷 위에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롱 패딩을 하나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채 후다닥 집을 나섰다. 띡띡띡띡 비번을 누르고 시댁에 도착하니 아버님은 안마의자에 앉아, 어머님은 장판에 엎드려 티브이를 보고 계신다.


“(어머님) 크크 아이고 뭐가 폰이 많더라 했더니”

“크크크크 아유 어머니 보고 싶어서 잠이 와야 말이죠. 한번 더 보고 자려고 또 왔지~”

“(어머님)크크크 잠옷 입고 날아왔구먼ㅎㅎ”

“(아버님) 애기는 자?”

“네 신랑이 재우고 있어요”


2층에서 내 목소리를 들은 아가씨가 큰 소리로 외친다.

“언니 왜 또 왔어??”

웅 보고 싶어서~~ 아유 이제 잠이 잘 오겠네. 주무세요~~ “

“그려~~ 종종 놓고 다녀~”

“크크 네에~~”


그렇게 폰을 다시 찾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는 이미 곤히 잠들어 있었다.


사실 어렵다 어렵다 생각하면 끝도 없이 어려운 게 시부모님을 비롯한 시댁과의 관계이겠지만, 서로 간의 예의를 지킨다면 얼마든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관계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신혼 애송이였다면 “어떻게.. 여보가 좀 가서 가져와주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혼 5년 차쯤 되었다면 적어도 옷은 갈아입고 갔을 것 같다. 이제 결혼 7년 차가 되니 파자마에 롱 패딩을 걸치고 이래 저래 능글맞은 멘트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잘 던지는 넉살의 달인이 되었다.


관계는, 특히 결혼으로 인해 새롭게 가족으로 맺어진 관계는 서서히 가까워지고 편안해지는  가장 좋은  같다. 너무 빨리 친해지려  필요도, 너무  거리감을 유지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자녀와 부모 모두가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켜 나가며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키워갈 , 나도 모르게 애정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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